[6·15선언이후]경협 '安心투자' 환경 조성해야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10분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간 경제협력의 본격 개막을 알렸다. 선언의 정신을 살리는 후속작업들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남북간에는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물자가 오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북간의 화해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런 의미에서 경협은 통일작업의 ‘피와 살’을 이루는 셈이다.

한국경제도 분명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남북협력시대가 열게 될 한반도 경제의 새 지평은 과거 삼국시대의 신라에 의한 통일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신라에 의한 그것이 결과적으로 한민족에게는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한 ‘족쇄’가 됐다면 지금의 그것은 ‘반도국가’에서 대륙국가로 스스로를 ‘복원’케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런 현란한 청사진에 취하기에는 아직 턱없이 이르다. 지금으로선 이런 미래상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남북 경협의 신시대는 정상간의 한두 번 만남만으로 이뤄지는 건 결코 아니다. 가야 할 길은 매우 멀고 험하다.

무엇보다도 여러 전제가 붙는다. 즉 ‘선언’을 뛰어넘는 ‘실질적’ 제도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 등 ‘각론’이 뒷받침돼야 공동선언이 천명한 경제교류와 협력의 정신이 실제로 현실화될 수 있다.

남북한은 과거에도 경제교류에 합의한 적이 있었지만 막상 실천된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개발원(KDI)의 고일동(高日東)연구위원은 “남북간 교류협력에 관해 합의와 선언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면서 “경제협력에 있어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협력의 제도와 틀을 짜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92년의 남북 기본합의서에 이미 그 골격이 제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그대로 행동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가령 합의서에서 구성이 제안된 경제교류공동위원회를 빠른 시일 내에 설치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이와 함께 남한측 기업이 북한에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 결제제도 마련, 상사분쟁조정기구 설립 등은 ‘최소한’의 조건이다.

전문가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강조한 ‘냉철한 머리’가 특히 요구되는 분야가 바로 경제협력 부문일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즉 남한측 기업들이 냉정히 이해득실을 따져 이익을 노리고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협 활성화의 또 한 측면은 궁극적으로 ‘통일비용’의 절감이라는 점이다.

남북간 경제격차가 심한 현재 상황에서 통일이 이뤄진다면 이는 극심한 ‘통일 후유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통일 독일에서 보는 것처럼 북한경제의 혼란, 실업문제 등은 남측에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된다면 통일비용은 그 만큼 줄일 수 있게 된다.

남북간의 활발한 경협은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케 할 것이라는 기대도 낳고 있다. 즉 정치적으로는 분단된 상태에서라도 경제적으로는 얼마든지 하나의 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북한의 열악한 사회간접시설(SOC)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은 남한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남한에서 남아도는 석탄을 북한으로 가져가, 놀고 있는 공장을 돌리고, 거기에서 생산된 제품을 철로를 통해 중국으로 수출하거나 미국에 내다 판다.’ 이런 단순한 구도에서부터 남북간에 그려볼 수 있는 ‘그림’은 무궁무진하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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