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회장 지분정리]현대自 분리 '끝내기 수순'

  • 입력 2000년 5월 25일 23시 48분


현대그룹이 소유 지분 구조를 크게 바꾸고 나서자 그 배경과 파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소그룹의 계열 분리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에서는 금융 당국과 주거래은행의 압력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설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실제로 현대의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은 현대투신사태 이후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주식 처분 및 경영 일선에서의 퇴진 △계열 분리 가속화 △자산 매각 등을 통한 현금 확보 등을 수차례 요구해 왔다.

현대는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를 현대그룹에서 분리키로 하고 현대중공업이 갖고 있던 현대자동차 지분(5.34%)을 팔았다. 또 현대자동차측은 현대종합상사의 지분(3.05%)과 고려산업개발의 지분(22.7%)등을 매각했다. 공정거래법은 그룹이 분리되려면 두 그룹의 계열사가 상호 출자를 통해 갖고 있던 상대 회사의 주식을 3%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현대와 현대자동차 소그룹측은 이번에 복잡한 상호 주식교환을 통해 서로의 지분을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정명예회장은 본인이 갖고 있던 건설 중공업 상선 주식을 정몽헌(鄭夢憲)회장 현대상선 현대건설에 매각, 현대그룹의 경영에서는 완전히 손을 뗀 대신 현대자동차의 최대 주주로 부상했다.

주식교환 과정에서 현대자동차는 현대정공을 밀어내고 자동차 소그룹의 지주회사로 탈바꿈함으로써 정명예회장은 사실상 현대자동차 소그룹을 지배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는 기아차의 최대 주주이며 기아차는 정몽구(鄭夢九)회장의 지분과 합칠 경우 현대정공의 최대 주주. 그러나 이날 발표에 대해 현대의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은 그다지 만족하지 않는 표정이다. 정명예회장이 현대그룹에서는 손을 뗐지만 현대자동차 소그룹의 경영에서는 손을 떼지 않았고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에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외환은행측의 시각. 이에 대해 현대측은 현실을 무시한 지나친 요구라고 반박하고 있다.

만약 현대중공업이 가지고 있는 현대차 주식을 정명예회장이 매입하지 않고 시장에 내다 팔 경우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현재 주식시장에서 현대차 주식이 바닥을 기고 있어 주식 매각은 시장의 교란을 가져오고 밑지는 장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

현대측은 또 "외자 유치를 위해 현대석유화학 매각 협상을 일본 회사측과 벌여 왔으나 일본측이 워낙 헐값을 제시, 매각이 어려웠다"며 "최근에는 대만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측은 약속대로 인천제철도 6월 이내에 계열 분리하겠다는 것.

한편 정명예회장의 자동차 소그룹 최대 주주 부상에 대해 미묘한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정명예회장이 자동차 소그룹의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대주주로서의 의무와 권한은 행사하겠다"는 말에 의미를 상당히 두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경영에 실패하거나 정명예회장의 눈 밖에 날 경우 정명예회장은 최대 주주로서 몽구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퇴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측은 "상속세 등 세법상의 문제 때문에 정명예회장이 주식을 물려주지 못할 뿐이지 빠른 시일내에 정몽구회장이 자동차 소그룹의 최대 주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기·홍석민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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