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구조조정 '투명성' 논란…당국, 정보공개 기피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주요 금융정책에 대한 시장의 충격을 우려하는 금융당국의 ‘현실론’이 도마에 올랐다.

각종 금융기관 부실이나 기업 구조조정 추진현황이 시장에 줄 충격을 우려해 구체적인 정보제공을 꺼리는 데 대해 이같은 태도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리고 시장불안과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

▽‘흐릿한’ 금융당국의 정보공개〓금감원은 지난달 금융기관의 99년말 기준 부실채권 현황을 발표하면서 전체 규모만 66조7000억원으로 밝혔을 뿐 가장 궁금한 기관별 부실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투신권의 부실이 드러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투신권 전체가 불신을 받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분석. 지난해 11월 한투 대투의 부실규모를 3조원대로 집계했던 금감원은 최근 그 규모를 8조5000억원으로 상향조정하면서 투신권 전체의 잠재부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서민금융기관인 금고업계의 내부사정도 장막에 가려 있다. 금감원은 막연하게 “전 업체중 20%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4% 미만”이라고 밝혔을 뿐 업체별 자기자본비율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환란 직후 투명한 정보공개를 약속했던 금융당국은 98년 하반기 대우라는 악재가 터져 금융기관마다 극심한 내상을 입자 구체적인 정보공개를 주저하고 있다.

▽당국의 ‘현실론’과 비판〓금감위 고위관계자들은 “공적자금이 여의치 않은 현실을 고려해달라”고 주문한다. 낱낱이 실상을 드러내면 부실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을 단번에 정리할 수 있지만 이 충격을 감내할 구조조정자금이 없어 단계적인 부실해소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

문제는 상당수 금융기관과 부실기업들이 정부의 상황 논리에 편승해 자구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 공적자금을 투입한 은행이 억대 명예퇴직금을 주는가 하면 부실 금융기관들이 ‘설마 폐쇄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공적자금을 요청하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최근 한국시장의 불투명성에 의혹을 제기한 사례 등을 들어 “정부의 단계적인 해결법이 화근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