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먼데이/국내증시 불안이유]美 기술株따라 '흔들'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40분


국내증시의 불안 요인은 무엇보다도 외풍에 취약한 체질이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증시를 좇아 정보통신 인터넷 등 기술주가 주도하는 파죽지세의 상승세를 이어온 것이 이를테면 원죄(原罪)였다. 역사상 처음 증시에 등장한 기술주에 대해서는 적정주가를 가늠할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 동종업종 주가를 일정비율로 할인한 주가가 곧 국내 기술주의 적정주가로 간주됐다. 이에 따라 작년말부터 미국 기술주의 등락에 의해 국내주가의 등락이 좌우되는 상황이 굳어졌다.

체질이 바뀌는 동안 체력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파산지경에 처했던 재벌들과 한국경제의 새 주역으로 떠오른 신생 벤처기업들이 주가상승을 이용, 은행 빚을 갚거나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앞다퉈 유무상증자를 실시해 증시자금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거래소시장의 경우 작년에 30조원을 넘는 증자물량이 쏟아져 시장체력이 소진되면서 올 2월초 급기야 증시 주도권을 코스닥시장에 넘겨주기도 했다. 다행히 올해는 증자물량이 월 평균 3000억원 가량에 그치고 수익증권 환매물량도 급한 것은 거의 다 소화된 상태다.

반면 코스닥시장은 올 들어 월평균 1조5000억원 가량(4월초 종가기준)의 증자물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 연내에 300여개 기업이 신규 등록할 예정이어서 적어도 상반기에는 수급불균형이 지속될 전망이다.

이처럼 공급물량은 넘치지만 주식이는 자금은 적고 이렇다할 투자자금은 적고 이렇다할 매수주체가 없다.

개인투자자들의 간접투자자금 규모를 나타내는 주식형수익증권 총잔고는 4월12일 현재 65조7900억원으로 연초 54조1700억원에 비해 늘었다. 하지만 순수 주식형수익증권 잔고는 44조5000억원으로 연초 48조2000억원보다 적어져 실제 주식투자자금은 줄어든 셈.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등지게 하는 것은 인플레이션, 금리상승, 금융구조조정 등이 2·4분기 이후 본격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다. 투자자들은 ‘저물가 속의 고성장’이라는 미국식 ‘신경제’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우사태로 인해 투신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도 개인투자자 증시외면의 큰 이유다.

투신권은 환매부담에선 어느 정도 벗어났으나 수조원의 미매각수익증권을 안고 있어 7월부터 채권 시가평가제가 실시되면 엄청난 평가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

개인과 투신이 힘을 쓰지 못하는 동안 외국인이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에 기대를 걸며 유일한 매수세력으로 활약했으나 이들도 4월 들어서는 순매도로 돌아섰다.

따라서 국내증시가 언제 얼마나 빨리 회복될지는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자국증시에서 빼낸 돈을 국내증시에 쏟아부을지, 아니면 자국증시에서 입은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국내증시에서 대거 이익실현으로 나올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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