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후 5대현안 점검]이제부터는 經濟다

  • 입력 2000년 4월 13일 20시 34분


《‘이제는 다시 경제다.’ 한국경제의 도약을 좌우할 각종 구조조정 현안들이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정서나 집단이기주의를 자극한다’는 우려 때문에 기피했던 문제들이다. 구조조정을 지휘해온 정부 관계자들은 “대선바람이 일기 시작할 내년 초쯤엔 사실상 체질개선 작업은 물건너간다”며 “시간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

▼금융구조조정/2次개혁 통해 자생력 키워야 ▼

2단계 금융 구조조정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아직 오리무중. 시장에선 ‘A은행과 B은행이 합친다더라’는 식의 소문이 퍼져 있고 은행주가는 바닥을 기고 있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선거 뒤에 보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은행 재무구조나 경쟁력, 경영진의 의식구조 등을 감안할 때 이합집산은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내부 판단.

금융산업의 새 틀을 짜는 작업은 △공적자금 추가조성 △금융지주회사 설립 △정부출자 금융기관의 민영화 △예금보험제도의 개편 등 4가지로 집약된다. 공적자금은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는 ‘실탄’이고 금융지주회사는 구조조정의 뼈대를 세우는 작업.

정부는 2년 동안 공적자금 64조원을 모두 썼다. 이중 15조원 정도는 회수했지만 추가로 실탄을 퍼부어야 할 곳이 늘어난다는 점이 고민. 서울보증보험 나라종금 서울은행 대한생명 등에 30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세금을 더 걷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정부는 입조심을 해왔다.

정부출자 금융기관의 조기 민영화는 정부 부담을 줄이고 ‘관치’ 시비를 차단할 수 있는 카드. 그러나 해당 금융기관의 주가가 액면가 밑으로 떨어졌고 증시부담이 만만치 않아 조기 매각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지주회사는 은행 통폐합을 촉진하고 외자유치를 통한 정부지분 회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떠오른 새로운 대안. 정부는 단일 또는 복수의 우량 금융기관이 금융지주회사를 만든 뒤 이 지주회사가 비우량 금융기관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 증권 보험 등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대형화되고 업종 특성에 맞춘 독자 경영도 가능해진다. 내년 실시예정인 금융기관의 예금보험료율 차등화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결정되느냐도 향후 금융계 판도를 좌우할 주요 변수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자본시장 안정/채권시가평가제 '연착륙'관건▼

주식 채권시장 활성화는 대표적 기관투자가인 투신권의 정상화가 관건이다. 총선 직전 정부는 대한투신 한국투신 등에 뮤추얼펀드의 판매를 허용키로 하고 분리과세형 5년 만기 장기상품 판매도 허용했다. 올초 수익증권 환매 등으로 영업기반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 투신권을 보호하려는 대책들이다.

정부는 또 13일 투신권의 인기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의 국공채 편입비율을 상향조정, 자금운용의 여지를 넓히는 등 잇따라 다각적인 투신권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금감원은 투신권의 재활은 궁극적으로 투자가들의 신뢰회복에 달려있다고 판단, 투신권 지배구조와 펀드 운용의 투명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양대 투신사의 경영진에 대한 특검을 이미 마쳤으며 빠르면 다음달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 관계자는 “과거 투신권이 인위적인 증시부양을 책임지면서 부실이 커진 만큼 정책 실패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중”이라고 밝혔다.

투신권 지원은 중장기적으로 채권 주식시장 육성에 기여한다. 채권시장 활성화는 또 금리안정을 가져와 각종 금융파생상품 시장의 육성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투신권의 신탁계정이 클린화될 7월부터 채권시가평가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는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채권의 가치를 투명하게 공시함으로써 투자자들의 ‘입질’을 유도한다는 계획. 이를 위해 채권전문 중개업자도 지정, 가격정보를 수시로 제공할 방침이다.

그러나 신용평가 분야가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시가평가제 도입에 앞서 평가업무에 대한 감독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채권시가평가제가 정착될 경우 하반기쯤엔 만기 이전에 중도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뮤추얼펀드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기업 구조조정/대우-삼성車 처리 급선무▼

총선후 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크게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대우워크아웃 및 삼성차 처리 등 사업구조조정으로 나뉜다.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서는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가 정부 개혁의 당위성을 일깨웠다는 평. 현재 법무부가 국내외 전문가그룹에 지배구조 개선안을 의뢰했으며 6월경 초안이 나오는대로 공청회 등을 거쳐 정기국회에서 상법과 증권거래법을 대폭 손질할 계획이다.

지난해말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지켰던 4대 재벌은 7월경 계열사간의 내부거래 등을 상계한 결합재무제표 발표를 앞두고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다. 부채비율이 높은 것으로 판명되면 정부가 다시 한번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토록 재벌들을 압박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

대우차와 삼성차 매각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부가 노조의 반발을 의식해 적극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 삼성차 매각협상은 프랑스 르노사와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대우차 역시 해외매각을 저지하려는 중소 부품업체들과 국내 완성차업계의 반발이 극심해 장기간의 가동중단 사태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밖에 삼성생명 교보생명의 상장문제도 현재 △상장이익의 계약자 배분원칙 △계약자 배분방법 등을 둘러싸고 해당업체와 정부가 힘겨루기 양상을 벌이고 있어 정부의 하반기 정책선택이 주목된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초대형 인수합병/移通-음료 '5개월표류' 끝낼때▼

공정위에는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문제, 롯데 컨소시엄의 해태음료 인수건이 거의 5개월여 계류돼있다.

이들 안건은 지난해말 사후승인 신청이 접수돼 당초 3월까지는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점쳐졌으나 워낙 당사자간 이해가 첨예하게 걸려 있어 한달 이상 지연되고 있다.

SK텔레콤-신세기통신 결합건의 경우 총선 전날인 12일 오후 열린 전원회의에 안건을 상정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11일 오전 갑자기 이를 1주일 연기해 19일 논의키로 했다. 공정위는 “SK텔레콤에 요청한 서류 일부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연기 사유를 밝혔으나 사실은 굳이 총선 직전에 이 ‘벌집’을 건드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

이 문제의 쟁점은 결합시 독점의 부작용과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세계적 대형화 추세 가운데 어느쪽에 더 무게를 두느냐는 것.

롯데 컨소시엄의 해태음료 인수건도 정부가 결정을 내리는 데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두 건의 굵직한 인수합병이 승인되면 통신업계와 음료업계에 ‘공룡’이 출현한다는 의미.

공정위는 19일 회의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음주 회의 결과에 따라 통신업계와 음료업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공기업 민영화/한전 분할매각 최대 이슈 ▼

한국전력의 민영화는 산업자원부가 “총선만 끝나면…” 하면서 기다려온 최대 공기업 현안.

한전의 발전 부문을 분할해 매각하기로 한 민영화의 핵심은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안’의 국회통과 여부다. 이 법안은 작년 정기국회에 상정됐으나 의원들의 극심한 ‘눈치보기’ 탓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우여곡절 끝에 통과가 좌절됐다.

산업자원부와 한전은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장관 등 간부들이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했지만 ‘국부유출론’까지 불거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노동계가 “법안을 찬성하는 의원에 대해서는 낙선운동을 펴겠다”고 압박하면서 처음 동조했던 의원들 중에서도 등을 돌리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산자부와 한전은 16대 국회가 구성되면 이 법안을 다시 제출, 최대한 빨리 통과시킨다는 계획 아래 이미 실무자 일부를 교체하는 등 ‘전열 정비’를 끝낸 상태. 그러나 노조 등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이 여전해 통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전 외에 다른 공기업의 민영화 일정은 총선 후 일단 탄력이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포철의 경우 지난해 무산된 산업은행의 지분 매각을 상반기에 다시 추진할 방침. 그러나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매각이 언제 될지는 점치기 어렵다.

대한송유관공사도 1·4분기에 자산실사를 마치고 정부지분 46.5%를 상반기 안에 완전 매각키로 했다.

한국중공업은 4월까지 지분 25%를 전략적 제휴 형태로 미국 GE BNFL에 매각하고, 이와 별도로 기업공개를 통해 지분 24%를 매각할 방침이다. 이어 상반기 안에 국내 경쟁입찰 방식으로 정부 지분 26%를 추가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