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씨 청운동자택 몽구씨에 물려주고 이사

  • 입력 2000년 3월 22일 19시 25분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사를 한 까닭은?’

현대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42년간 살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을 장자인 몽구(夢九)회장에게 물려주고 22일 종로구 가회동으로 이사했다.

가회동 자택은 화신백화점 창업주 박흥식(朴興植)씨가 살았던 집으로 대지가 청운동 집과 같은 600여평. 현대측은 16일 이 집을 W사 박모회장(59)으로부터 55억원을 주고 매입했다.

정명예회장의 이사는 현대증권 이익치(李益治)회장 인사문제를 계기로 두 아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여러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몽구회장이 장악한 현대자동차측은 “이번 이사는 정몽구회장이 명예회장의 법통을 이은 후계자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85세의 고령에 40년 넘게 살던 집을 물려주고 이사를 한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

청운동 자택은 58년 정명예회장이 직접 지은 집으로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산골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좋은 터”라고 소개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전자 정몽헌(鄭夢憲)회장측은 “건설과 전자 등 핵심부문을 몽헌회장에게 물려준 명예회장이 몽구회장을 달래기 위한 제스처로 장자는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며 “금융 부문까지 몽헌회장쪽으로 지분을 정리해 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정반대로 해석했다.

비교적 중립적인 현대그룹 인사는 “청운동 자택이 너무 낡아 명예회장이 거동하기 불편한데다 무엇보다 명예회장이 ‘걸어서 출퇴근하기를 원해’ 회사와 가까운 집을 매입한 것”이라며 아전인수식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또 “명예회장이 두 아들의 갈등이 가시화된 뒤 울산공장이나 서산농장을 방문하는 등 대외활동을 부쩍 늘렸다”며 “이번 이사는 명예회장이 직접 현대의 앞날을 결정짓겠다는 의미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한편 해외출장 중인 정몽헌회장과 이익치회장이 당초 예정을 넘기고 해외에 체류중인 것과 관련해 재계는 “이번 인사에 대해 아직도 승복하지 않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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