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 인력난]프로그래머 몸값 자고나면 껑충

  • 입력 2000년 3월 7일 20시 06분


작년 이맘때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벤처 사장들. 요즘은 사람을 구하느라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닌다.

벤처창업을 위해 한달전 홍보대행사 차장을 그만둔 민모씨(38). 창업의사를 밝히자 마자 투자자가 몰려들어 자본금 2억원을 쉽게 마련했다. 그러나 정작 직원을 구하지 못해 아직까지 창업을 못하고 있다.

▼데려가려면 2배 줘야▼

웹 프로그래머 2명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벤처에서 근무중인 15명을 접촉했지만 모두 협상이 깨졌다. 연봉 2000만∼3000만원을 받던 웹프로그래머들이 3000만∼4000만원을 요구하고 나선 것. 민씨는 차라리 돈을 더 주고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를 구하려 했지만 유명 웹프로그래머의 몸값은 이미 훌쩍 더 뛴 상태인데다 현재 근무중인 회사가 약속한 스톡옵션을 포기하는 대가로 2배의 스톡옵션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마저 포기했다.

“작년 몸값 생각하다가는 한 명도 못구한다”는게 주위의 충고였다.

벤처 인력의 몸값이 불과 몇 달만에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대기업의 인력이 벤처업계로 속속 유입되고 있지만 기존 벤처기업의 인력확충과 창업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벤처전문 홍보회사에서는 ‘3군데 이상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지못하면 무능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최대한 빨리 성과물을 내놔야하는 벤처의 특성상 숙련인력이 필요한데 숙련인력의 공급은 한계가 있어 인력 수급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현재 몸값이 치솟는 분야는 웹프로그래머 등 엔지니어와 기획 및 마케팅.

벤처업계에서는 사람을 빼내가려는 측과 기존 인력을 지키려는 측 간에 전쟁이 한창이다. N사는 10여개 업체가 자사의 웹프로그래머를 빼내가려고 접촉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프로그래머의 연봉을 25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인상해줬다. 사장은 그래도 안심이 안돼 직원을 불러 “돈이 전부는 아니다. 고생을 함께한 의리를 지키자”며 호소하고 있다.

▼기존업체 사람단속 비상▼

핵심기술인력이 창업을 한다고 나가버려 휘청거리는 회사도 상당수. 첨단기술인 통합메시징처리시스템(UMS)기술을 개발중인 M사는 키맨(핵심기술자)과 엔지니어 3명이 창업을 한다고 나가버려 업무가 중단됐다. “스톡옵션을 올려달라”는 기술진의 요구를 사장이 거절한 직후의 일이었다.

마케팅과 기획팀을 이끌 팀장급 인력도 ‘귀하신 몸’. 불과 세달전 벤처에서 대기업 직원을 스카웃할 때 대리급은 연봉 2600만원과 스톡옵션 2000∼4000주, 과장급은 3500만원과 스톡옵션 2000∼8000주를 제공했다. 요즘은 대리급은 4000만원, 과장급은 5000만원 이상을 줘야한다. 이름있는 대기업의 과장급은 스톡옵션이 아니라 언제라도 현금화할 수 있는 주식을 요구하고 있다.

헤드헌팅 회사인 드림서치 이기대사장은 “벤처로 돈이 몰리는 한 창업열기는 식지않을 것이며 결국 벤처 인력의 몸값 상승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며 “돈은 넘치는데 사람은 부족한 것이 업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병기김호성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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