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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28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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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은행들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선진금융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겉모양만 그럴듯해졌을 뿐 속내용은 그대로”라는 혹평도 적지 않다.
▽은행권 판도가 바뀌었다〓작년초만 해도 은행권은 자산규모와 업무성격, 지역성 등에 따라 시중은행 후발은행 특수은행 지방은행으로 나뉘었으나 구조조정 이후 건전성이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부각되면서 △우량은행 △조건부 승인은행 △지방은행의 새 분류틀이 마련됐다.
고객들이 은행의 안전성을 따지게 되면서 우량은행은 자금이 몰려 더 튼튼해지고 부실은행은 더 허약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
외국자본의 대거 진출로 순수 국산은행이 사실상 사라지게 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독일 코메르츠방크와 골드만삭스가 이미 외환은행과 국민은행에 대규모 출자를 했고 주택은행은 외국인 지분이 60%를 웃돈다.
▽돈되는 사업을 찾는다〓은행권의 공통 화두는 수익성 제일주의. 은행들은 각종 서비스를 △신용도가 높은 고객 △돈많은 고객 △거래규모가 큰 고객 쪽으로 집중하면서 일선 점포의 내부구조도 우대고객 편의 위주로 바꾸고 있다.
예금과 대출금리 차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돈장사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올해초 일부 은행이 뮤추얼펀드를 판매한데 이어 최근에는 증권사와 제휴해 증권 거래계좌 개설과 입출금 업무를 대행해주는 은행이 늘고 있다. 금융계에선 이를 ‘은행의 증권화’ 또는 ‘은행의 종합금융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수익성은 좋아졌지만 내실은 미흡〓올 상반기중 15개 은행은 2조4000여억원대의 순이익을 낼 전망. 지난해 25조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성업공사에 매각한데다 부도기업이 크게 줄어든 덕택이다.
덩치가 커지고 외형이 바뀐 듯 보여도 은행 경쟁력의 핵심인 소프트웨어의 구조조정은 성과가 거의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않다. 대표적인 예로 기업가치와 가능성, 고객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여전히 담보위주의 대출에 안주하는 관행이 꼽힌다. 자금이 남아 돌아도 우량기업에만 대출하다 보니 은행의 본래 역할인 자금중개 기능이 퇴색하는 실정.
▽해결해야 할 과제〓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부 기업 가계 등 각 경제주체가 ‘은행도 영리기업’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규모 외자유치에 성공한 은행 관계자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신경을 써야할 기관이 7,8곳이나 됐다”며 “한국은 은행경영을 하기에 너무 힘든 나라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절감했다”고 말했다. 환은경제연구소 신금덕(辛金德)동향분석팀장은 “은행들에 국제 금융경쟁에서 살아남을 자생력을 갖추라고 주문하면서 이런 저런 명분으로 별도의 의무를 지우려 하는 이율배반적 풍조가 사라져야 진정한 의미의 선진은행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