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에 새출발 정세영씨]현대산업개발 첫 출근

  • 입력 1999년 3월 8일 19시 33분


정세영(鄭世永·71)전현대자동차명예회장이 8일 ‘새 직장’으로 첫 출근했다.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타고 내리는 모습은 현대차 시절 그대로였지만 출근 시간은 전보다 20여분 늦은 7시25분경.

정명예회장은 기다리고 있던 기자에게 ‘계동 사옥 보다 집에서 더 멀어서’라고 늦은 이유를 스스로 설명했다.

새 일터가 낯설어서였을까. ‘스마일맨’이라 불릴 만큼 항상 웃음짓던 얼굴이 이날은 다소 굳어 있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새 오너’를 담담하게 맞았다. 환영하는 축하 화환도, 플래카드도 없었다. 차문을 열어주는 경비직원 외에 특별히 그를 맞는 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회장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지난 32년간 그랬던 것처럼 그는 이날도 여전히 ‘타고난 일벌레’ 모습 그대로였다.

―32년만에 건설업에 복귀하는 심정이 어떤가.

“글쎄. 이제 서서히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지.”

―현대자동차 새 경영진이 자문을 해오면 응할 생각인가.

“그쪽 일은 이제 내가 없어도 잘될 것이다. 조카(정몽구회장)가 잘해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쪽 일은 완전히 떠난 사람이다.”

―형님(정주영명예회장)은 만났나.

“지난 주말에 찾아뵙고 인사드렸다. 형님이 ‘잘 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정명예회장은 현대차를 떠난 이튿날인 지난 토요일 현대산업개발에 들렀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은 1t 트럭 5대를 꽉 채웠다. “많이 버리고 왔다”지만 32년간의 ‘세간살이’는 적지않은 분량이었다.

거기에는 30년간 써온 낡은 책상도 포함돼 있었다. “새 책상으로 바꾸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그 책상을 그렇게 아껴왔다. 그 책상이 놓이는 15층 집무실은 전회장이던 조카가 쓰던 방이다.

“32년 전 황무지에 현대차를 세울 때보다는 훨씬 낫겠죠.”

그런 표정으로 정세영명예회장은 또한번의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이날 현대그룹은 인사를 통해 △정몽규 현대차부회장을 현대산업개발회장으로 △이방주 현대차사장을 산업개발사장으로 △유인균 산업개발사장을 인천제철사장으로 △노관호 인천제철사장을 현대차사장으로 △조양래 현대차써비스사장을 현대차비상임고문으로 보냈고 △김판곤 현대차부사장은 산업개발부사장으로 △윤주익 산업개발부사장은 인천제철부사장으로 △박완기 인천제철부사장은 현대차부사장으로 각각 자리를 바꾸도록 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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