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빅딜 문제점]정치논리에 경쟁력강화 뒷전

입력 1998-12-04 19:39수정 2009-09-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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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는 ‘슈퍼 빅딜’이 추진되면서 5대그룹간 ‘타율적인 기존 빅딜’의 방식과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전문가들은 빅딜이란 형식 자체가 재벌개혁을 상징하는 것처럼 비쳐지면서 정치논리가 덧씌워져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당초 취지가 상당히 퇴색됐다고 지적한다.

빅딜 대상업체의 경영개선계획이 채권단에 제출된 이후 불협화음을 내는 것도 이처럼 경제성 분석을 소홀히 한 탓이라는 반성도 무성하다.

정부의 수뇌부는 국민여론과 외국투자가들의 시선을 의식해 ‘문제가 적지 않지만 여기서 되돌릴 수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

그러나 기업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부처의 상당수 실무자들까지도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업종의 빅딜은 무모한 발상이라며 원천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재무구조 개선(부채비율 200% 달성)시한이 1년여 남은 만큼 향후 추진될 사업구조조정에서는 보다 분명한 원칙과 방식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한다〓빅딜 필요성은 97년말 대우와 삼성 등 재계에서 처음 제기됐다. 지분과 자산교환을 통해 주력업종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면서 중복과잉투자를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

이 논리가 정치권에 전달되면서 무게가 실리게 됐고 물밑에서 ‘삼각빅딜’정지작업을 벌였던 것이 6월 확인됐다. 그러나 삼각빅딜 안이 한 그룹의 막판 거부로 뒤틀어졌고 이에 따라 여론이 악화됐다.

결국 1차 정재계간담회(7월26일)에서 재계는 철도차량 항공 등 10개업종(추후 7개로 축소)의 빅딜안을 내놓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부실기업간 컨소시엄 방식이 주종을 이룬 이 방안은 경제성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수용하느냐 마느냐’식의 논란을 거듭하면서 대세로 굳어져버렸다.

이런 방식의 빅딜안에 대해서는 국책연구원의 전문가들조차 이의를 달았고 청와대 수석간에도 이견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

정부는 5대그룹이 구조조정안을 도중에 내놓을 때마다 사전에 언론에 유출하는 ‘김빼기작전’을 벌여 재계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가 시소를 벌인 끝에 그린 개혁의 밑그림은 채권단으로부터 ‘경제성을 도외시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말았다.

▼산업정책적 고려가 없다〓철도차량 항공기의 경우 그룹에서 분리한 뒤 통합법인을 세우는 방식. 한 민간연구소 임원은 “이는 가만두면 망할 사업부문들을 한데 모아 금융지원을 통해 관급형 독점사업으로 육성하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5대그룹 임원들도 대개 “전세계적인 합병 움직임을 통합 근거로 들지만 당장 재무구조가 개선돼도 기술격차가 커 외국업체의 하청생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본다. L그룹 임원은 “부실사를 합쳐 (규모의 경제를 통해) 납품가를 낮추는 등 경제성 분석이 선행됐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한전과 포철의 독과점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경쟁체제 도입을 서두르는 것과도 배치된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국가 전략적인 분석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업계는 물론 정부내부에서 팽배하다. 세계시장을 상대하는 업종인 만큼 치밀한 국내외 시장 동향분석이 필수적이었다는 지적.

재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내정간섭’에 가까운 재벌개혁 발언을 우리정부가 증폭시켜 압박수단으로 삼는 데에도 불만이 많다. H그룹 관계자는 “아시아권이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화업종에 대해서는 왜 미국이 언급조차 하지 않는지 속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국의 손발이 안맞는다〓재계의 빅딜안이 조금씩 공개될 때마다 정부 부처들은 톤이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전경련 등 재계는 이 때문에 여러차례 정부의 정확한 진의를 몰라 허둥대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빅딜기업들의 순자산가치(자산총액―부채총액)가 플러스가 돼야한다 △빅딜업종 증자에 다른 계열사가 참여하면 부당내부거래 대상에서 빼준다는 등 빅딜 가이드라인도 정책조율 미비로 막바지에 급조된 인상. 그나마 이같은 조치들도 소액주주 보호와 부당내부거래 차단이라는 원칙에 배치돼 원만히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발전설비 선박용엔진 구조조정은 한국중공업 민영화일정에 연계돼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한중 지분을 가진 산업자원부는 시간을 독촉하지만 한중측은 민영화에 대비해 부실자산을 가능한 한 떠안지 않으려 한다. 외국투자가들은 “곧 민영화될 공기업이 구조조정을 주도한다는 게 이상하다”고 말한다.

▼형평성 논란 부른다〓유화의 경우 현대와 삼성종합화학은 90년대 초 상공부의 중화학공업육성 정책에 힘입어 기존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시장에 진출했다. 이들 탓에 내부거래 대상 계열사가 없던 대한유화 등 전문업체가 도산했다.

SK그룹 고위임원은 “부채비율이 높은 후발 두 업체가 합친다고 금융지원에 나서면 나머지 유화업체들은 봉이란 말이냐”고 강하게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손병두(孫炳斗)전경련부회장은 “서산이 합치면 자연스럽게 여천 SK의 통합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외자유치를 전제로 금융권 지원이 이뤄질 서산과 달리 여천(LG석유화학 호남석유화학 등) 울산(SK 대한유화) 등은 비교적 재무구조가 탄탄해 굳이 외자지분을 유치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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