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신약개발 뒷얘기]철야-「남몰래」연구로 시련 극복

  • 입력 1998년 9월 23일 19시 38분


국산 첫 신약이란 ‘대어(大魚)’를 낚아 올린 LG화학 바이오텍연구소의 ‘신토불이’ 연구원들. 그동안의 산고(産苦)를 돌이키면 ‘10년 적공(積功)과 최소 3억달러(약 4천억원)가 소요된다’는 신약개발의 통설이 실감난다.

LG측이 퀴놀론계 항생물질 개발에 착수한 것은 90년 1월. 이 분야에서 미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최수창(崔洙昌)책임연구원이 프로젝트 리더(PL)를 맡았다. 세계적인 제약업체들까지도 ‘뭉쳐서 연구개발하자’는 전략적 제휴가 한창이던 당시 신약 불모지였던 한국업체의 도전은 ‘계란으로 벽치기’나 다름없었다.

신물질 개발에 몰두하던 92년 3월. 최책임연구원이 위암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개발팀에 닥친 첫번째 시련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연구는 몇달동안 표류했다. “신물질 항생제를 꼭 개발하라”는 그의 유언이 있었지만 연구의 뚜렷한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남두현(南斗鉉)책임연구원은 몇개의 샘플을 유력후보로 꼽고 전임상단계인 동물실험을 추진했다. 그러나 실패. 실험에서 강한 독성이 발견돼 연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93년 2월 퀴놀론계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던 미국의 A사가 시판한 항생제를 투약한 환자가 사망했다. 국내에서도 퀴놀론계 항생제의 독성을 의심하게 됐고 ‘개발팀을 해체해야 한다’는 사내여론이 비등했다. 연구팀은 눈물을 머금고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했다.

“팀 전원에게 흉금을 털어놓자고 했죠. 개인시간을 내서라도 연구를 하겠다는 의견이 쏟아지더군요. 여기서 그만 두면 최박사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남책임연구원)

이후 연구열은 불타올랐다. 밤중에 실험실을 지키는 연구원들도 생겼다. 이들의 ‘남몰래’ 연구는 결국 경영진에 알려졌고 7개월만에 본격적으로 연구가 재개됐다.

후보물질 ‘LB20304a’가 발견된 것은 뒤늦게 연구팀에 합류한 홍창용(洪昌容)책임연구원의 수훈. 독성이 약한 새로운 컴파운드(합성물질) 개발에 매달린 그는 ‘옥심’이라는 분자구조를 도입, 획기적인 후보를 발굴하는 데 성공한다.

“연구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각방을 돌며 책상 컴퓨터 모니터마다 ‘Congratulations! We made it(축하한다. 우리는 해냈다)’란 쪽지를 붙여놓았죠.”

실험분야에 정통한 김인철(金仁喆)연구위원 추연성(秋淵盛)책임연구원 등이 잇따라 PL을 맡으면서 국산 신약개발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국내외에서 실시한 동물실험에서는 약효 독성 약리 등 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결과가 나왔다. 전임상 임상1단계 실험결과는 OK.

문제는 임상2단계.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받아야 하지만 단독 실험엔 엄청난 거액이 소요되는 데다 ‘실험데이터를 외국 의약당국이 인정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벽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외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외국환자들을 실험해야 하는데 어느 병원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항생제분야의 다국적 제약업체 스미스클라인비참과 지난해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다. 대신 실험과정에 깊숙이 참여, 노하우를 배우고 향후 한반도는 물론 동남아 중국시장 판권을 보장받는다는 조건을 관철시켰다.

LB20304a는 현재 임상3단계 실험중에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 등 각국 의약당국의 판매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예상밖의 우수한 실험결과에 스미스측이 더 고무돼있다는 게 LG측 설명. 까다로운 임상2단계를 통과한 만큼 3단계부터는 사실상 ‘요식절차’에 가깝다며 자신에 차있다.

개발팀은 이미 올해 5월 구본무(具本茂)그룹회장으로부터 기술개발대상을 받은 데 이어 구조조정의 삭풍속에서도 급여 인센티브를 받았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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