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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30일 0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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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월말 결산시기를 맞아 은행일을 보지 못한 고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나 일부 퇴출은행 직원들은 금융노련과의 연대투쟁 및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자칫 은행업무 공백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날 오후 6시가 넘어서면서 동화 동남은행 등 일부 은행의 직원들은 일단 농성을 풀어 인수은행 직원들이 전산실에 들어갔으나 컴퓨터 비밀번호를 알아내지 못해 가동은 하지 못했다.
▼ 퇴출은행 직원 반발 ▼
충청은행은 금융감독위원회의 퇴출은행 발표를 앞두고 28일 오후부터 29일 새벽까지 전산망을 가동, 중간정산한 퇴직금 5백20여억원을 전 직원 1천4백75명의 개인계좌에 입금한 것으로 밝혀져 고객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충청은행의 한 고객은 “2,3일 안에 송금이 안되면 부도가 난다”며 “자기들 퇴직금은 챙겨가면서 고객은 부도가 나도 괜찮다는 말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나은행 인수팀 관계자는 “업무시간 외에 전산망을 가동해 퇴직금을 마음대로 정산한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라고 말했다.
동화은행 서울본점 1층 영업창구에는 지로용지와 입출금 전표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현금교환 창구의 금전출납기도 열려 있는 등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대전 충청은행 본점 지하주차장 창고 등지에서는 29일 오후 은행 대주주에 대한 대출 및 대출 타당성 검토 자료 등이 대량 발견돼 조직적이고 고의적인 주요 문서 파기 의혹이 일고 있다.
자료중에는 여신부와 검사부가 보관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총여신 50억원 이상 여수신 및 담보 현황’과 ‘이사회의 여신 결의사항’ 등 수십종의 대외비 서류가 파쇄기로 잘려진 서류 사이에 섞여 있었다는 것.
이 가운데 이사회 결의사항 등은 은행 관행상 보관 연한이 10년이 넘는 것들로 하나은행 관계자는 “담당자들의 PC에 별도로 보관돼있지 않다면 앞으로는 확인하기 힘든 자료들”이라며 “고의로 파기했다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금감위 상황실에 따르면 퇴출은행 직원들은 전산기기 가동에 필요한 암호를 삭제하고 시스템 가동중에 전원을 차단하는 등 복구업무를 지연시키고 있다. 충청은행 인천지점에서는 한 직원이 승용차로 은행정문을 들이받아 경찰이 부상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 고객피해 ▼
월말이라서 각종 공과금 전월세금 당좌결제 등이 몰려 고객의 피해와 불편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동은행과 몇년간 당좌거래를 해왔다는 한 고객은 “30일 월말결산을 앞두고 은행측과 상담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느냐”며 은행앞에서 서성이며 혹시나 영업이 재개되는지 기다렸다.
경기은행을 찾은 주부 박모씨(37·인천 남동구 구월동)는 “재산세를 납부하기 위해 은행에 나왔는데 돈을 찾지 못했다”며 “정부가 퇴출은행이 돼도 돈은 찾을 수 있다고 밝혀 지난 토요일 돈을 찾지 않았는데 어떡하면 좋으냐”며 하소연했다.
경기은행과 거래해온 인천시와 산하 10개 구 군, 경기도내 과천 광명시 등 4개 자치단체의 세입 세출 업무도 상당한 차질. 인천시 관계자는 “29,30일 이틀 동안 재산세 등 8백억원 정도의 세입을 예상했었는데 어림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 대동은행 신천동 지점을 찾은 김모씨(56)는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려고 돈을 찾으러 왔는데 은행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불평했다.
▼ 당국 입장 ▼
금감위는 퇴출은행 직원들의 조직적 반발이 장기화할 경우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될 것으로 보고 공권력 투입요청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으나 당장은 물리적 충돌을 자제하고 이들을 설득하는데 주력할 방침.
금감위는 일단 퇴출은행 직원과 노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연락가능한 은행직원들을 설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금감위는 올초 종금사 정리과정에서도 은행감독원 직원들이 나서 종금사직원들을 설득, 반발을 무마했던 것이 효과가 컸다고 보고 있다.
윤원배(尹源培)금감위 부위원장은 “부당행위를 저지르는 직원은 재고용때 불이익을 받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전국 35개 은행노조가 가입한 금융노련과 민주금융노련은 금감위와 5개은행 퇴출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연대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당국에서는 총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갈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리급 이하 직원들의 경우 대부분이 재고용될 것이라고 밝혀둔 상태여서 조만간 이들이 농성을 풀고 인수업무에 협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부·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