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자]삼성반도체,내핍 돌입『명성 되찾자』

  • 입력 1997년 12월 31일 18시 33분


새해를 맞은 경기 기흥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 반도체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기흥밸리’의 웅장함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생산직과 관리직 등 1만5천여명의 근로자들에게서는 과거의 활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흥공장 구내도 제조업체답지 않게 한산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해만 해도 3천5백대를 수용하는 주차장은 사원들의 승용차로 언제나 만원이었다. 주차공간을 찾지 못한 사원들은 도로 옆에 승용차를 대놓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난해말부터 구내 주차장은 승용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기흥인터체인지로부터 공장에 이르는 2차로도 자동차들이 막힘없이 달린다. 기흥공장의 활력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주력 생산품인 16MD램 가격이 폭락한 탓이다. 95년 40달러를 넘던 단가가 공급과잉으로 지난해에는 5∼7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삼성전자의 효자제품이었던 반도체가 이제는 옛 명성을 그리워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난해말 몰아닥친 국제통화기금(IMF)한파도 근로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삼성그룹이 조직을 30% 축소키로 한데 따라 삼성전자도 본부체제를 사업부체제로 개편, 조직을 슬림화했다. 4천여명의 직원을 삼성전관 등 다른 계열사에 재배치하는 아픔도 겪었다. 기흥공장의 경우도 투자조정과 경비 절감, 생산성 향상의 3대 원칙 아래 감량과 내핍에 들어갔다. “투자는 현재 하한선에 와있는 상태”라는 게 기흥공장 임원의 말. 지난해말에는 영국에 투자키로 한 7억달러의 지출을 연기했다. 이 회사 김재범(金在範)이사는 “지난해말부터 신용장이 개설되지 않고 일부 거래업체가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수출만이 활로인데 주변환경이 급격하게 악화했다. 1월에도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복지후생비도 깎였다. 2만원만 내면 나머지를 회사가 지불하던 휴양지 이용료도 전체 비용의 절반을 사원이 내도록 바뀌었다. 야간에 구내를 대낮같이 밝히던 조명등의 불빛도 약해졌다. 실내온도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가격이 오를 것에 대비해 전기와 가스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생산라인에 들어서면 이처럼 우울한 분위기는 금세 긴장과 열기로 뒤바뀐다. 비메모리반도체를 만드는 5번 생산라인의 경우 방진복으로 무장한 근로자들의 몸놀림이 과거에 비해 한결 빨라졌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비메모리반도체는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생산비중을 높인 대표적인 품목이다. IBM 컴팩 등 수요자의 요청을 받아 주문형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경쟁업체를 누르기 위해서는 주문받은 제품을 얼마나 빨리 만드느냐가 제일 큰 관건이다. 특히 반도체는 제조기술을 먼저 확보하면 할수록 유리한 이른바 ‘기술선점효과’가 그 어느 업종보다 크다. 따라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기술혁신 시설투자가 회사의 사활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각 공정에 배치된 3∼4명의 근로자중 최고참 전담책임자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생산속도를 점검한다. 제품의 이동시점을 알리는 노란색 전등이 깜박거리기가 무섭게 재빨리 제품을 다음 단계로 옮긴다. 덕분에 지난해 석달 정도 걸리던 납기를 15일로 크게 단축했다. 대만의 경쟁업체를 제치고 미국 두 회사의 주문물량을 모두 확보하는 성과도 올렸다. 전진욱(田鎭旭)과장은 “근로자들이 생산에 쏟는 정성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실감한다. 수율이 높은 반도체를 빠르게 만들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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