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본 97한국경제]서툰 시장주의실험 「최악경제팀」

  • 입력 1997년 12월 29일 20시 20분


3월초 한보사태 해결이라는 현안을 지고 기용된 강경식(姜慶植)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경제수석. 김영삼(金泳三)정부에서 여섯번째로 경제팀을 맡은 이들은 시장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다. 강―김 경제팀의 시장주의는 결국 시장을 외면한, 어설픈 경제철학으로 판명났다. 그가 중장기 청사진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삼미 진로 대농 기아그룹 등 대기업들은 줄줄이 부도를 맞았다. 강전부총리의 시장주의에는 일관된 원칙이 없었다. 시장주의에 따르면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돼야 한다. 그러나 그는 시장원리에 반하는 부도유예협약을 만들어 대기업의 부도를 늦춰줬다. 그러는 동안 이들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조속히 정리되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제기초가 무너지고 있음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채 그는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인력을 금융개혁작업에 총투입했다. 기아사태는 시장주의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강전부총리는 사회문제로 번진 기아사태의 불을 끄지 못한채 1백일을 허비했다. 삼성자동차 부산지역 유치위원장으로 삼성의 자동차진출을 도운 강전부총리의 「전력」은 기아를 삼성에 넘기려한다는 의혹을 샀고 기아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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