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본 97한국경제]특혜의 대명사 한보

  • 입력 1997년 12월 29일 20시 20분


1월23일 자정무렵 제일은행을 비롯한 45개 금융기관장들은 자금난에 몰린 한보철강에 대해 부도처리로 가닥을 잡았다. 당초 법정관리나 은행관리를 조건으로 자금지원방안을 논의했으나 정태수(鄭泰守)한보그룹 총회장이 끝까지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 이날 불과 54억원의 자금을 막지 못한 한보그룹은 계열사 24개, 그룹매출규모 7조원으로 재계14위의 재벌그룹. 부도직후 집계된 한보철강의 부채는 4조2천4백60억원으로 총투자액 5조7천억원에 육박하고 자본금 3천1백47억원의 13.5배에 달하는 규모. 거의 모든 사업을 빚으로 했다는 얘기였다. 한보부도로 5조원에 이르는 자금이 묶이자 다른 재벌그룹들도 부도루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부도기업 리스트」가 나돌자 금융기관들은 대출상환을 서두르기 시작, 부도도미노의 징후가 나타났다. 한보가 거액대출 특혜를 받게 된 배경에 대해 의혹이 일자 정계와 금융계도 한보태풍에 휘말린다. 정계 금융계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 수감됐다. 한보사태는 한국재벌의 모순을 본격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된다. 즉 자금조달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정치권 등의 힘을 빌려 은행돈을 꺼내다 쓴 재벌의 차입위주 경영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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