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기업 세계에서 흔히 경쟁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일컫는 이 말은 이제 국내 기업에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같으면 자동차 조선 전자 유화 유통 등은 주요 그룹들의 핵심사업으로 어떤 경우든 「양보」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는 이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여지없이 쓰러져가는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
실제 최근 재계에서는 자동차산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전략적 제휴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심에는 역시 기아와 삼성이 서 있다. 기아자동차는 최근 대우그룹을 통해 군용지프와 중소형상용차를 해외에 판매하는 전략적 제휴를 추진키로 대우와 합의했다.
기아의 진념(陳稔)회장은 취임이후 끊임없이 『경쟁력 확보와 경비절감을 위해 생산 판매 파이낸싱 등 여러가지 면에서 국내외 어느 기업과도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급기야 최근 기아 최고경영진 사이에서는 『삼성과도 필요하면 전략적 제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삼성은 이미 지난 4월 기아측에 이를 공식 제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우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기아나 삼성이나 독자적으로 경영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인수합병에는 출혈이 따르는 점을 감안할 때 전략적 제휴가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 삼성 LG 대우 선경 등 5대 그룹도 중복투자가 심한 산업분야의 경우 경쟁력이 약한 기업을 강한 기업에 인수합병하거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몇몇 사례에서 보듯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현대석유화화과 삼성종합화학은 최근 나프타 에틸렌 등 유화원료와 액체제품을 교환하기 위한 공동파이프 건설에 합의했다.
특정 제품이 부족한 쪽에 다른 쪽이 빌려주기도 하고 구매할 때는 서로 가격을 공개, 메이저들의 조종에 공동대응키로 한 이 제휴는 치열하게 경쟁해온 두 업체의 종래 관계상 「사건」으로까지 불렸다.
이어 여천단지의 석유화학업체인 대림산업과 호남석유화학이 원료인 에틸렌의 장기공급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 대표적 과잉투자 업종으로 인식돼온 유화업종의 전략적 제휴는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4일에는 개인휴대통신(PCS) 경쟁업체인 한통프리텔과 한솔PCS가 기지국을 공동활용해 투자비 등 비용을 줄이기로 했다. 업종을 가릴 것 없이 국내 기업간의 손잡기가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0월에 조사한 「95년 이후 기업간 전략적 제휴 실태」를 보면 국내기업간 전략적 제휴는 95년 37건에서 96년 86건, 올해는 9월말 현재 1백건 등 급증추세에 있다. 과거 국내 기업들이 기술도입을 목적으로 주로 외국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던 형태에서 최근엔 국내기업간 시설 공동이용 또는 공동마케팅을 펼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 것.
반면 전자업체의 경우엔 삼성전자가 도시바사와 플래시메모리카드 공동마케팅에 나서고 LG반도체가 선마이크로사와 자바기술 공동개발을 꾀하는 등 해외 기업과의 제휴가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전자부문 대기업들은 또 국내 벤처기업들과의 제휴도 활발하게 추진중이다.
한편 중견 벤처기업들간의 협력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최근 한글과컴퓨터와 공성통신전자가 대주주간 보유주식 교환거래를 통해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은 것은 그 신호탄의 하나.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성수 수석연구원은 『전략적 제휴가 새로운 생존수단으로 각광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특정부문에서 우위기업과 협력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매력적이고 신뢰를 주는 파트너로 명성을 쌓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박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