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자금 양성화案]일부시각 『효과 의문』

  • 입력 1997년 5월 7일 20시 01분


「범죄와 뇌물, 무자료거래로 조성된 지하자금 34조원(추정)을 어떻게 산업자금으로 활용할 것인가」. 姜慶植(강경식)경제팀이 지하자금을 산업자금화하기 위해 실명제 보완대책을 내놓은 뒤 「지하자금 양성화론」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지하자금 양성화 방안은 벤처기업이나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에 출자할 경우 출자부담금(도강세)만 물면 세무조사를 면제해주고 금융소득 최고세율을 선택하면 국세청 통보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 요컨대 지하자금이 산업자금으로 나올 경우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안은 실명제 훼손여부를 떠나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지하자금 중 90%가 외형상 은행예금 등 실명화된 자금으로 존재하고 있어 굳이 도강세를 물면서 벤처자금에 출자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들이다. 또 은행예금중 실명화되지 않은 자금을 실명화하는데는 오는8월12일까지는 40%, 그 이후엔 50%의 과징금을 물고 벤처기업에 투자할 경우엔 또 20%의 도강세를 물어야 한다. 결국 장롱속에 숨어있는 1조원 미만의 자금이 대상인데 이를 위해 실명제의 취지를 훼손하면서까지 이같은 제도를 만드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물론 재정경제원은 이 방안이 단순히 지하자금 뿐 아니라 부동산 등에 몰려있는 투기성자금까지 포함한 모든 비생산적 자금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李漢久(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은 『지하자금의 원천은 잘못된 제도와 법률에 있는 만큼 실명제와 무관하게 제도개선을 통해 근본을 없애야 한다』며 『자금출처 조사면제는 상속 증여세를 면제해주자는 것에 불과해 자칫 지하자금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 지하자금의 확대재생산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자금화의 길은 실명제 보완이 아니라 금융시장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는게 이소장의 주장이다. 제도권 금융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가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금융종합 소득과세율을 낮추고 저축상품 세율도 과감히 낮춰야 한다는 것. 재경원 금융실 관계자도 『이번 실명제 보완 방안은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의 원인을 실명제에서 찾기 때문에 추진된 것』이라며 『실제 효과는 없으면서 공연히 실명제 취지만 훼손시키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고 말했다. 〈임규진·이용재기자〉 ▼ 국세청 입장 지하자금 양성화를 위한 정부의 실명제 보완방침과 관련, 국세청은 이미 고액 실명전환자에 대해 자금출처조사를 하고 있는 마당에 이를 면제할 경우 법개정을 전후해 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형평에 어긋난다며 반발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또 금융소득종합과세 자료를 자금출처조사 자료로 활용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 개정법에 삽입되면 증여세 탈루조사 행정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93년 실명전환 유예기간중 2억원 이상을 실명전환한 사람 가운데 고액순으로 1만여명을 선별, 이들로부터 자금출처 소명자료를 모두 전달받은 상태. 현재 전국 7개 지방국세청이 소명자료를 분석, 내용이 불성실한 일부에 대해서는 출처조사를 벌이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고액 실명전환자에 대한 출처조사는 개인이 가진 금융자산이 떳떳한 것인지를 가리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만큼 조세형평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자료를 자금출처자료로 활용하지 않도록 한다는 법개정 방향에 대해 『연간 금융소득이 4천만원 이상인 주부 미성년자 등 증여혐의가 뚜렷한 사람들에 대해 자금출처를 요청하는 것은 탈루세금을 막아야 할 징세당국의 직무』라고 반박했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이달중 전국 금융기관이 보내온 지난해 금융소득자료를 개인 및 부부별로 합산하는 작업을 마치면 과세대상자에게 개별 통보하고 이 중 미성년자나 주부 등에게는 자금출처 소명자료 제출을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국세청 관계자는 벤처기업이나 창업투자회사 설립자본금에 대한 자금출처조사 면제와 관련, 『법이 그렇게 개정되면 해당기업에 대해서는 자료제출의무를 면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허문명기자〉 ▼ 사채시장 지금은 『한보와 삼미의 부도 등으로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사채업자들이 최근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하고 있습니다』(A파이낸스 심사팀장) 『요즘 들어 돈세는 기계로는 셀 수 없는 돈이 수억원씩 입금되는 사례가 가끔 있습니다. 4,5년 동안 묵어 눅눅해졌기 때문에 돈 세는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지요. 실명제를 피해 안방으로 숨어들었다가 최근 정부의 실명제 보완 논의에 따라 다시 햇빛을 찾아나오는 돈들로 추정됩니다』(모시중은행 명동지점 창구책임자) 명동사채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철저한 안전위주 영업전략으로 바뀌었다는 점. 이 때문에 부도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A급어음은 사채업자들이 몰려 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할인되는 기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명동사채시장의 A급어음 할인금리는 연 12.6∼13.2%로 최근 은행의 대기업 어음할인율인 연 13.09%보다 낮게 형성될 때가 많다는 것. 반면 중소기업이나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어음은 금리가 크게 치솟았다. 또 어음금액 쪼개기와 만기 단축도 중소기업어음 등에 대한 위험회피 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다. 직원이 3백20명인 서울 J공업의 자금담당임원은 『과거에는 1억∼5억원정도 범위에서 어음할인을 했으나 지금은 1억원이상은 거의 할인을 하지 못한다』면서 『할인을 하려면 금액을 쪼개야 한다』고 말했다. 부도위험을 줄이기 위한 정보전은 그 어느때보다 치열해졌다. 특정기업의 부도설이나 자금난과 관련된 정보는 대부분 사채시장에서 생산된다는 것이 명동주변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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