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을 만든 공학인의 삶을 보라[곽재식의 안드로메다 서점]

  • 동아일보

◇엔지니어 대한민국을 만들다/김근배, 유상운, 선유정 지음/1048쪽·5만5000원·이음

요즘 주식 시장에선 한국 반도체 산업이나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런데 혹시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누가 어떻게 개발했는지, 한국 자동차의 엔진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길을 가다가 번듯한 다리나 잘 닦은 길, 또는 멋진 공단 지역 같은 곳이 나타나면 흔히 “저 다리는 무슨 시장이 만들었다”거나 “저 공단은 무슨 도지사가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다리를 건설하거나 공단을 짓는 데 고위층이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만들지는 않았다. 물론 정책을 결정한 업적은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높은 사람을 칭송하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이, 실제로 땀 흘려 작업하고 기술적인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의 공이 잊혀진다는 건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벼슬 높은 사람을 떠받드는 문화의 영향도 작지 않다. 고을에 농사가 잘돼도 다 사또 나리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나라에 날씨가 좋아도 다 임금님 덕이라고 노래하던 흔적이 아닌가 싶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화가 과도해지다 보면, 간혹 정치 다툼 와중에 상황이 바뀌었을 때,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싫어하는 무슨 도지사가 저 다리를 만들었으니, 저 다리도 나쁜 것이다”라는 주장이 나올 때도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높은 사람의 공을 지나치게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역효과로 좋은 기술의 결과 자체를 폄하하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 발전과 산업 발전 과정에서 현장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공장을 짓고 운영하기 위해 애쓴 기술인, 연구원, 과학자들의 공을 지금보다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연을 알아 가는 건 누가 잘했는지를 따지고 칭송하는 일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어떻게 기술을 얻었고, 어떤 사람들이 그 기술의 성과를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기에, 지금 우리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은 어떤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어떤 다른 방법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고도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교훈을 다른 개발도상국에 전해, 세계가 빈곤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김근배 교수를 비롯한 여러 필진이 함께 힘을 모아 낸 ‘엔지니어 대한민국을 만들다’는 바로 그런 노력을 담은 책이다. 책 속에 30명 이상, 한국 산업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20세기 공학자와 기술인의 삶에 대한 서술이 담겨 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곤 해도 지금으로서는 어느 책 못잖게 상세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어서 정성 들여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달리 말하자면 두껍고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포함된 책인데, 그래도 과감하게 집어 들고 읽다 보면 결국 한 사람, 한 인생의 애환을 다룬 내용인지라 처음 드는 걱정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현대 반도체 기술의 바탕이 되는 모스펫(MOSFET·금속산화막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한 강대원 박사가 6·25 때 해병대에서 복무했던 사연이나, 1970년대 경기 부천에서 반도체 사업을 벌여 보겠다고 뛰어다니던 강기동 박사가 청춘을 바친 사연 등은 누가 읽더라도 꽤 오래 가슴에 남을 만하다.

#한국 반도체#자동차 산업#기술 개발#산업 발전#고도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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