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콘텐츠 한국어로
이현 성우-김민수 디렉터
“오디오만 켜놓는 멀티태스킹 증가…한국어 교육용으로도 활용 많아져”
픽셀로직코리아의 김민수 디렉터(왼쪽)와 이현 성우. 김 디렉터는 “최근 더빙이 콘텐츠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미 완성된 옷이 있는데, 그 옷은 내 몸에 맞춘 게 아니에요. 하지만 어떻게든 그 옷을 입고 런웨이에 서야 합니다.”
10일 서울 마포구 픽셀로직코리아에서 만난 이현 성우(42)는 더빙 작업을 패션쇼 무대에 빗댔다. 애니메이션 ‘원피스’ ‘원펀맨’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한 그는 “원작이란 틀 안에서 성우 자신의 목소리로 캐릭터를 소화해 한국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더빙이라고 설명했다.
텍스트 음성 변환(TTS) 기술의 발전 등으로 설 자리가 좁아졌던 성우 더빙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전략 변화 등과 맞물려 다시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특히 넷플릭스 등은 최근 글로벌 콘텐츠의 한국어 더빙을 대폭 늘리고 있다.
이 성우는 “작년엔 일주일에 녹음 한 건이 아쉬웠다면, 올해는 하루에 한 건은 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더빙 콘텐츠도 다양해졌다. 더빙 제작사인 픽셀로직코리아의 김민수 디렉터는 “이전엔 영미권 콘텐츠가 중심이었지만, 최근엔 독일이나 인도 등 다양한 국가의 콘텐츠로 확장됐다”고 했다.
“넷플릭스 등은 더 이상 더빙을 부가 작업으로 보지 않습니다. 콘텐츠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로 인식하고 있어요. OTT와의 협업을 계기로 5.1 서라운드 사운드·돌비 애트모스 등으로 녹음이 확대되면서 업계 전반의 제작 역량도 향상되고 있습니다.”(김 디렉터)
OTT들이 최근 한국어 더빙을 적극 확대하는 이유는 뭘까. 넷플릭스는 이에 대해 “더 많은 한국 시청자들이 글로벌 콘텐츠를 편안하고 몰입감 있게 즐길 수 있도록 더빙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막을 읽지 못하는 어린이나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고령층, 시각장애인만 더빙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운동이나 요리·출퇴근 때 오디오만 켜놓고 소비하는 멀티태스킹 이용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용으로 더빙 콘텐츠를 활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이 성우는 “쇼츠 시대가 되면서 영상을 라디오처럼 틀어 놓고, 귀에 꽂히면 그때 다시 몰입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며 “귀로 먼저 들을 수 있는 더빙이 유리한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더빙 시장도 커지고 있는 추세. 이런 기술의 부상이 성우 더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김 디렉터는 “대사 사이의 침묵에 담긴 호흡,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나오는 해석은 아직 AI가 대체하기 어렵다”고 했다.
“AI를 배척할 순 없고, 같이 가야 되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성우들이 섬세한 연기를 통해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제대로 표현해 내는 게 중요합니다. 음성 연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겐 오히려 좋은 시대가 오고 있는 게 아닐까요.”(이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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