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폭력 희생자 달래는 그 눈빛 그 몸짓

  • 동아일보

염혜란 열연 ‘내 이름은’ 15일 개봉
학교폭력 빗대 역사적 사건 풀어
그날의 넋 달래는 보리밭 춤 압권

제주4·3사건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에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렸던 정순(염혜란)은 참혹한 살육이 벌어졌던 보리밭을 찾아 기억을 떠올린다. CJ CGV 제공
제주4·3사건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에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렸던 정순(염혜란)은 참혹한 살육이 벌어졌던 보리밭을 찾아 기억을 떠올린다. CJ CGV 제공
살아남기 위해 진실을 외면해야 했던 이들이 있다. 1949년과 1998년 제주. 15일 개봉하는 영화 ‘내 이름은’은 49년의 간극이 있는 두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와 아들이 진실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1998년 제주. 열여덟 살 소년 영옥(신우빈)은 자신의 촌스러운 이름이 콤플렉스지만, 친구 민수(최준우)와 별 탈 없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 하지만 서울에서 전학 온 경태(박지빈)가 순식간에 반에서 ‘권력자’가 되며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영옥은 경태와 민수 사이에서 제대로 서지 못한 채 경태의 폭력을 방관한다.

손자뻘이지만 아들인 영옥을 홀로 키워온 어머니 정순(염혜란). 그는 바람에 잎이 날리는 걸 볼 때마다 정신을 잃곤 한다. 결국 정신과를 찾은 정순은 깊이 잠들어 있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1949년 제주의 봄을 조금씩 되짚어 간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포럼 부문으로 초청받기도 한 ‘내 이름은’은 제주4·3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1940년대 제주에서 벌어진 폭력 아래 희생된 수많은 이들에게 보내는 추모곡과도 같다. ‘남부군’(1990년)부터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작품을 꾸준히 선보인 정지영 감독(80)의 공력이 예사롭지 않다.

‘내 이름은’은 제주4·3평화재단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어머니가 겪었던 역사적 사건을 아들이 겪고 있는 학교 폭력에 빗대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정 감독은 2일 간담회에서 “공동체에 외부 세력이 들어와 갈등이 시작되고, 집단 폭력으로 이어진다”며 “이는 일반 사회도 마찬가지이기에 학교 폭력 중심으로 서사 구조를 짰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순을 연기한 염혜란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말보다 눈빛으로, 대사보다 몸으로 정순을 살아낸다. 시대적 비극을 온몸으로 통과한 인물의 한이 움직임 하나하나에 배어 있다. 정순이 보리밭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아픔을 정화하는 동시에 그날의 죽은 넋을 달래는 것처럼 보인다. 염 배우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 접근이 조심스러웠는데, 4·3을 다룬 작품들과 실제 겪은 분들의 증언 등을 많이 참고했다”면서 “이야기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말해 주는 지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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