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고 또 피며… ‘3·1운동의 무궁화’ 조선독립신문 릴레이 발간

  • 동아일보

발간-전국배포 등 숨겨진 뒷얘기
천도교-교사 등 발행주체 잡혀가면… 학생 등 다른 기관이 이어 비밀 발행
신문 입수하면 다시 수백장씩 등사… 함경도까지 확산, 만세시위 이끌어
佛영사관에도 전달, 독립의지 알려

1919년 3·1운동 당시 조선독립신문 제1호를 인쇄한 서울 종로구 보성사 터. 동아일보DB
1919년 3·1운동 당시 조선독립신문 제1호를 인쇄한 서울 종로구 보성사 터. 동아일보DB
“그 신문은 동굴, 고기잡이 배, 가짜 분묘 등 일본인의 눈에 띄지 않는 먼 곳에서 인쇄되어 다른 일반 신문과 마찬가지로 전국에 배포되고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발행됐던 ‘조선독립신문’에 대해 소설가 강용흘(1898∼1972)이 자전적 영문 소설 ‘초당’(The Grass Roof·1931년)에 쓴 내용이다. 이 신문이 얼마나 비밀리에 발행됐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107년 전 일제강점기에 3·1운동이 전국으로 들불처럼 확산하고 이어졌던 데엔 지하신문, 특히 조선독립신문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연구가 나왔다.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일제 판결문 등을 통해 조선독립신문의 발간 상황과 전국적 배포 및 재발행, 기사 내용 등을 분석하고 “이 신문은 발행 초기부터 발행자가 일제 경찰에 검거될 것을 예상하고, 여러 발행기관이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선독립신문은 지금까지 실물이 남은 24종을 비롯해 총 56종이 파악됐다. 1∼9호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종일 선생(1858∼1925·보성사 사장) 등 천도교 계열 인사들이 발행했다. 하지만 보성법률상업전문학교장 윤익선과 천도교 월보 편집원 이종린, 서적조합사무소 서기 장종건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얼마 안 가 잇따라 체포되고 등사기구를 압수당했다.

그런데 이 그룹이 9호를 낸 게 3월 18일자인데, 바로 이튿날인 19일자로 다른 그룹에 의해 10호가 발간됐다. 김 전 연구위원은 “제10∼15호는 배재고등보통학교 교사 강매,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 김일, 광주이씨대동보소 총무 이풍재 등이 주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마저 3월 27일 체포됐지만, 조선독립신문은 무궁화처럼 ‘피고 지고 또 피며’ 발행이 이어졌다. 16호는 배재고보 학생 장용하와 경성고보 이춘봉 등이, 17∼27호는 보성고보 학생 대표이던 장채극과 이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대표 이용설, 한성정부를 준비하던 김유인·전옥결 등이 이어서 냈다.

김 전 연구위원은 “일제 당국은 갖은 고문과 악형을 통해 지하신문의 근거지를 박멸하려고 했다”며 “당시 지하신문을 발행하고 배포하는 일은 만세 시위 주도만큼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일석 이희승 선생(1896∼1989)도 당시 등사판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지하신문을 발행했다.

조선독립신문은 입수한 사람이 수십에서 수백 장씩 다시 등사하며 함경도를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됐다. 3·1운동 참여자에 대한 판결문엔 독립선언서와 함께 조선독립신문을 등사 배포 낭독했다는 기록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배포는 대개 학생층이 맡았고, 인쇄는 학교나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쓰기도 했다.

조선독립신문 1호
조선독립신문 1호
조선독립신문 40호. 진관사 소장
조선독립신문 40호. 진관사 소장
1호는 영문판으로도 발행됐다. 3월 1일 경성전수학교 학생 박승영이 프랑스영사관 관원에게 ‘조선의 독립 선언을 귀국 정부에 알려 달라’며 조선독립신문을 전달했다는 기록이 프랑스 외교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다.

신문 기사는 독립선언의 역사적·시대적 정당성을 강조하고, 일제의 잔혹한 지배 정책의 불법성과 야만성을 폭로하는 한편, 국내 각지의 만세시위 상황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대한 소식을 많이 실은 것으로 분석됐다.

김 전 연구위원은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침략당한 벨기에가 ‘라 리브르 벨지크’라는 지하신문을 발간하며 저항했던 것처럼, 조선독립신문은 3·1 독립선언의 의지를 널리 알리고 독립투쟁을 고취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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