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백년사진’에서 선택한 사진은 1925년 2월 1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법정 사진입니다.
재판을 받는 피의자의 얼굴과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 위에는 피의자가 직접 쓴 붓글씨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 (위) 리동수와 그의 필적 (아래) 재판소 문 앞에 모인 방청객. 1925년 2월 13일자 동아일보.
● 헌법재판소 제공 사진의 의미
최근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재판과 관련하여, 어제(2025년 2월 14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사진을 먼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늦은 오후에 열린 겨울아시안게임 여자 피겨에서 금메달을 딴 김채연선수의 사진이 1면을 장식했지만, 전국판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문형배 소장 권한대행에게 오른손을 들어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동시에 왼손으로는 항의하는 변호사를 만류하는 순간이 포착된 사진이 실렸습니다. 해당 사진의 출처는 ‘헌법재판소 제공’으로 표기되었습니다.
◇ 2025년 2월 14일자 동아일보 전국판 1면 pdf 화면이와 관련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에는 이렇게 완벽한 보도사진을 촬영하는 전담 사진가가 따로 있는 것일까요? 혹은 윤 대통령의 얼굴이 다소 부어 보인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사진을 선정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헌법재판소 내부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사진기자는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고정형 카메라를 통해 변론 과정을 녹화하고 있으며, 언론사는 이 영상 파일을 웹하드에서 다운로드한 뒤, 필요한 장면을 캡처하여 보도에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 제공’이라는 출처가 붙게 됩니다. 그런데 영상을 캡처해서 만드는 사진은 사진기자가 스틸 카메라로 포착하는 현장 사진에 비해 덜 또렷합니다. 대통령과 변호사의 얼굴이 부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사진은 풀로 취재. 사진기자협회에서 4명. 일종의 포토 타임 포토세션에만 촬영
그렇다면 신문사에 소속된 사진기자들은 재판을 직접 촬영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진기자들은 헌법재판소와 사전 협의를 통해 ‘POOL(집단 취재)’ 형식으로 변론 장면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진기자협회 및 인터넷 언론에 소속된 사진기자들이 매번 변론이 열릴 때마다 4명씩 들어가 취재합니다. 다만, 전체 변론 과정을 촬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재판 시작 후 약 3분~5분 정도 허용되는 ‘포토 세션(photo session)’ 동안만 촬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제 공방 과정은 카메라로 기록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변론이 끝나면 동영상 파일을 웹하드에 올려놓습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받은 언론사들이 영상을 다운받은 후 캡처 프로그램을 이용해 장면 장면을 사진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의미있는 순간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이 이번 2025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보도하는 신문사들의 방식입니다. 물론 풀 취재를 통해 확보된 고해상도의 사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워낙 초반부에만 촬영한 장면들이라 뉴스의 흐름을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과거 탄핵 심판 당시에는 헌법재판소가 변론 과정을 영상으로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POOL 취재 사진이 더 많이 사용되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게다가 최근 동영상 해상도가 향상되고 캡처 프로그램이 발전하면서, 작업이 더욱 용이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 100년 전 재판 보도의 방식
이번에 소개하는 1925년 동아일보 속 재판 보도 역시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이완용 암살을 기도한 이동수의 공판이 열린 장면이었으며, 방청을 위해 500~600명의 시민이 몰려들어 법원 앞이 혼잡을 이루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동수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필적(서명)까지 함께 실렸는데, 이는 필체를 통해 피의자의 성격이나 심리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재판부는 ‘공안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방청을 금지한다고 발표하였고, 이에 변호인단은 재판이 공공 질서에 미칠 영향이 없으므로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며 방청 금지 조치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취재하던 신문 기자들은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며, 재판 방청 금지가 과도한 결정임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법정 내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한 조치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당시 동아일보 김동진 기자 조선일보 박팔양 기자, 시대일보 강호 기자 등이 직접 법원장을 만나 교섭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기존 방침을 유지하였고, 기자들의 촬영은 결국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재판과 관련한 피의자 사진과 방청객의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고정 카메라로 촬영 후 익명처리가 필요한 부분만 드러내고 언론과 국민에게 동영상을 공개하는 현재 상황도 살펴보았습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판의 공개 수준은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법정 내 촬영 및 보도 방식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좋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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