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감시 아닌 소통도구” 백남준이 그린 미래는 왔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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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맞아… ‘일어나 2024년이야’ 백남준 특별전
1시간 영상 전체 큰 화면서 감상
케이지-이브 몽탕 등 장면별 설명
대륙과 문화의 경계 허물고 연결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기념전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 전경. 
‘굿모닝…’ 전편과 주요 시퀀스를 볼 수 있다. 또 뮤지션 바밍타이거와 미술가 류성실이 ‘굿모닝…’의 내용과 형식을 오마주해 만든
 신작 ‘SARANGHEYO 아트 라이브’도 함께 전시된다.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기념전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 전경. ‘굿모닝…’ 전편과 주요 시퀀스를 볼 수 있다. 또 뮤지션 바밍타이거와 미술가 류성실이 ‘굿모닝…’의 내용과 형식을 오마주해 만든 신작 ‘SARANGHEYO 아트 라이브’도 함께 전시된다.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통해 암울한 감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1984년 1월 1일.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인공위성으로 실시간 연결한 생방송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전파를 타고 미국, 프랑스, 독일, 한국의 텔레비전으로 방송됐다.

비디오 아트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이 기획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는 시대를 낙관한 ‘굿모닝…’은 전 세계 2500만 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했고 그의 대표작이 됐다. ‘굿모닝…’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가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21일 개막했다.

● 케이지부터 몽탕까지, 화려한 출연진

‘굿모닝…’은 유명한 작품이지만 1시간 가까운 분량의 영상 전체를 큰 화면에서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 전시장에 가면 이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총 22개 시퀀스 중 8개 시퀀스를 작은 모니터를 통해 골라 볼 수 있다.

동료 예술가 샬럿 무어먼의 ‘TV 첼로’ 연주 장면을 비롯해 존 케이지의 사운드 퍼포먼스와 현대미술 거장 요제프 보이스의 ‘오웰의 다리-21세기를 위한 바지’ 퍼포먼스가 교차 상영되는 시퀀스, 머스 커닝햄이 ‘스페이스 요들’ 춤을 추는 장면 등이 전시됐다.

전시장 입구 터치스크린을 통해 장면별 설명과 등장인물 소개도 볼 수 있다. 케이지, 보이스, 커닝햄 등 당대 예술을 이끌었던 아티스트들과 함께 이브 몽탕, 오잉고 보잉고, 사포 등 대중 음악가들의 영상이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끈다. 백남준이 유럽, 미국, 아시아 등 대륙은 물론 순수 예술과 대중문화 간 경계를 허물고 연결하고자 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남준이 ‘굿모닝…’ 제작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앨런 긴즈버그, 케이지, 보이스와 함께 만들었던 판화도 전시됐다. 김윤서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은 1984년이 오는 것을 대비해 1983년 초부터 시나리오를 만들고 방송국 관계자를 만나 기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다”며 “그가 시대 흐름을 읽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예술가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 오웰에게 보내는 긍정의 새해 인사

백남준은 왜 ‘굿모닝…’을 기획했을까? 그는 1993년 9월 26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TV를 통해 재미만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부처의 모습과 달, 물고기, 컴퓨터 그래픽을 넣어 재미를 방해했다”면서도 “매스미디어가 독재자의 수중에 장악돼 민중의 눈을 가려 세상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오웰의 생각에 도전장을 냈다”고 썼다.

즉 ‘TV 부처’ 같은 작품이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고 세뇌하는 매스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다룬 것이라면, ‘굿모닝…’은 그 기술을 잘 활용해 세계를 연결하고 소통하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면모를 부각한 것이다.

백남준은 이어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이며 정보 단절의 시대에 대중의 눈을 일깨우는 이른바 ‘전자 고속도로’라며 그런 의미에서 ‘굿모닝…’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1984년 정월에 방영된 이 프로는 망하지 않고 건강하게 생존했던 우리들이 오웰에게 보내는 새해 인사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기술이 새로운 소통과 평화를 열어줄 것이라 믿었던 백남준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김 학예연구사는 “1984년 이후 기술은 더욱 극적으로 발전했지만 우리는 그만한 세계 평화에 도달했는지 전시를 통해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년 2월 23일까지. 무료.


용인=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어나 2024년이야#백남준#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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