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탑골 공원, 풍경인가 저항인가[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0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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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사진 No. 44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1924년 1월 20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을 소개합니다.

1924년 1월 20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
1924년 1월 20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석이 크게 서 있고 그 뒤로 누각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입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탑골 공원입니다.

▶ 100년 전 서울에 눈이 내리자 사진기자가 탑골 공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온 모양입니다. 관련된 기사는 별도로 없습니다. 가볍게 찍은 스케치 사진인가 봅니다. 설명은 아주 간결합니다.

◇ 오랜만에 보는 설경
- 어제 탑골공원에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진기자들은 눈이 내리면 주변 풍경 좋은 곳을 찾아가 사진을 찍습니다. 어차피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펑펑 내리는 눈을 보았을 텐데 굳이 사진을 찍어 지면에 게재합니다. 혹시 못 본 독자들을 위한 배려일까요? 아니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시간을 기록하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요? 사진기자들이 눈 스케치를 가는 장소는 다양합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대체로 회사 근처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아주 잠깐 내리다 말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강원도에 폭설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으면 미리 자작나무 숲이나 대관령을 찾아가 기다립니다. 봄을 앞두고 눈이 내린다면 동백꽃이 피어 있는 곳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저도 얼마 전 눈이 내린 다음 날 서울 남산에 다녀왔습니다. 정작 눈이 내리는 시간에는 사진이 별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큰 눈이 서울에 내리더라도 풍경 사진은 눈이 완전히 그친 후에 제대로 찍을 수 있습니다. 남산 순환로와 서울 타워를 오르내리며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왜 남산을 택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울의 상징 같은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우거진 나무 숲 사이로 길이 나 있어 설경을 즐기는 시민들도 같이 사진에 담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풍경은 쓸쓸해 보이고 리얼리티도 떨어지기 때문에 인적이 있을 만한 곳을 선택합니다. 경복궁이나 덕수궁도 설경 스케치에 잘 어울리는데 그런 곳들 역시 고풍스런 건물들이 많기도 하고 관람객도 사진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눈풍경에 어울리는 곳이 고궁이나 공원이라면, 폭설로 서울 시민들에게 불편이 초래된다면 강변북로 출근길이나 강남대로 퇴근길이 사진의 소재가 됩니다. 엉금엉금 눈을 뚫고 출퇴근해야 하는 하루가 그날의 뉴스 포인트이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사진의 촬영 장소는 유행이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신문과 방송 카메라가 자주 비추는 곳이 예전에는 그다지 자주 다뤄지지 않던 장소일 수도 있고, 반대로 예전에는 자주 등장했던 장소가 지금은 뜸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사진기자를 처음 시작했던 1990년대 말. 추운 날씨에 출근하는 시민들의 표정을 스케치하기 위해서 사진기자들이 모였던 곳은 서울 지하철 1호선 대방역에서 여의도로 넘어가는 다리였습니다. 그 촬영 포인트가 지금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로 바뀌었습니다. 특별히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의교를 걸어서 출근하는 시민이 급격히 줄어 ‘그림이 안되는’ 풍경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이 새로운 로케이션을 찾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100년 전 탑골 공원 설경 사진은 여러분이 보시기에 너무나 평범한 사진일 겁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우선 시간적인 촉박함이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문 편집을 총괄하는 부장이, 너무 답답하고 속 터지는 뉴스만 가득한 사회면에, 가슴이 시원한 사진이라도 한 장 넣자고 갑자기 결정했던 것은 아닐까요? 갑자기 취재 지시를 받은 사진기자가 마감시간에 임박해 촬영했던 것은 아닐까요?

두 번째 이유로 상상할 만한 점은, 지금이야 탑골 공원이 노인들의 휴식처 또는 노인 문제의 상징처럼 인식되지만 100년 전 신문을 만들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특별한 장소였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탑골 공원은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조선왕조 때에는 세조가 건립한 원각사가 있던 곳을 1897년에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조성한 곳입니다. 많은 문화공연행사와 집회 장소로 활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서울의 중심, 근대화의 가능성 그런 느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사진이 찍히기 5년 남짓 전인 1919년 3월 1일. 이곳 탑골 공원에서 한 남성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5천명의 시민들과 학생들이 독립을 외쳤었다고 합니다. 3.1만세운동의 발상지인 것입니다. 단순한 설경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의 정체성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백년이 지난 2024년 1월 17일 서울 종로 탑골 공원 전경.  이 사진의 오른쪽 누각 쪽에서 사진을 찍으면 100면 전 신문에 난 사진과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2024년 1월 17일 촬영.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백년이 지난 2024년 1월 17일 서울 종로 탑골 공원 전경. 이 사진의 오른쪽 누각 쪽에서 사진을 찍으면 100면 전 신문에 난 사진과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2024년 1월 17일 촬영.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서울에 갑자기 눈이 내린 17일 오후에 100년 전 저 사진 속 탑골 공원에 가봤습니다.
귀부 위의 비석과 누각이 그대로 보입니다. 신기했습니다. 다만 비석 주변에 누각이 하나 더 생겨 사진으로는 같은 모양은 아니었습니다.

백년 전에는 없던 누각이 하나 더 생겨  비석을 감싸고 있다.  옛날 신문 속 사진은 아마 이 앵글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2024년 1월 17일 촬영/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백년 전에는 없던 누각이 하나 더 생겨 비석을 감싸고 있다. 옛날 신문 속 사진은 아마 이 앵글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2024년 1월 17일 촬영/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문득, 한국 전쟁의 포화를 잘 견뎌내 준 문화재와 그 옆 아름드리나무들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탑골 공원은 하늘에서 쏟아졌던 전쟁의 포탄에서 벗어났었나 봅니다.
탑골 공원이라는 이름이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원래 파고다 공원을 1990년대에 탑골 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상식과는 좀 다른 자료입니다.

오늘은 100년 전 서울의 상징 중 한 곳이었던 탑골 공원의 설경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댓글에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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