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국어 능통한 IB 만점 서울대생 “다 포기해도 ‘배우’가 될 거예요”[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7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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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우 꿈꾸는 서울대생 권수민 씨 (상)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배우가 되길 소망하는 서울대생 권수민 씨. 이미 몇 편의 영화와 연극 등에 출연한 신인 배우지만, 여전히 연기를 배우고  스스로 담금질하며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성실한 청년이다. 사진제공 권수민 씨.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배우가 되길 소망하는 서울대생 권수민 씨. 이미 몇 편의 영화와 연극 등에 출연한 신인 배우지만, 여전히 연기를 배우고 스스로 담금질하며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성실한 청년이다. 사진제공 권수민 씨.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했을 때 가장 나쁜 점은 그 외의 다른 일을 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늘 현실에 매여 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나 붕 떠서 긴 세월 동안 펼쳐진 운명의 행로를 굽어볼 때가 있다.”(이디스 워튼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서)

천직(天職)이란 뭘까.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란 뜻을 잠시 음미해보자. 자신의 천직을 찾는다는 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건 선천적 재능으로 ‘잘하는 일’을 하는 걸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걸 일컫는 걸까. 언뜻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나 큰 차이로 다가올 수 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권수민 씨가 그렇다. 그는 재능이 넘치는 청년이다. 좋은 여건에 공부 소질까지 타고나 현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다니며 영어와 중국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한다. 흔히 국제 수능이라 부르는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국제공통 대학입학 자격시험)’는 만점을 받기도 했다. 경영학 등을 전공할 계획인 수민 씨는 말 그대로 전도유망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천직은 이런 길 위에 있지 않다. 수민 씨는 ‘배우’를 꿈꾼다. 단지 꿈만 꾸는 게 아니다. 숱한 큰 기회를 버리고 연기를 택했으며, 여러 현실적 어려움에도 마음을 꺾지 않고 있다. 과연 수민 씨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겐 치기로도 보일 그의 ‘올인’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서울 관악구 서울대  종합교육건물(자유전공학부 건물)에서 만난 권수민 씨는 최근 중간고사와 배우 오디션,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하면서도 씩씩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서울 관악구 서울대 종합교육건물(자유전공학부 건물)에서 만난 권수민 씨는 최근 중간고사와 배우 오디션,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하면서도 씩씩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2003년생 권수민이라고 합니다. 서울대 22학번, 2학년 재학 중이고요. 자유전공학부인데 앞으로 경영학과 정보문화학을 복수전공할 생각이에요. 이건 학생 신분이고요. 연기자를 꿈꾸는 사람이란 소개가 더 정확할 거 같아요. 현재는 배우지망생과 신인배우 그 중간쯤 되는 거 같아요. 연기학원은 꾸준히 다니고 있고, 지금까지 몇몇 영화와 웹드라마 등에 출연했습니다.”

-중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상하이에서 7년, 선전에서 7년 정도 살았어요. 아빠가 기업 해외법인에서 근무하셔서 학교를 모두 중국에서 나왔어요. 초 1~4년은 현지 중국학교를 다녔고, 이후에는 미국식 국제학교에 다녔어요. 여전히 가족은 중국에 있어서 한국으로 홀로 유학을 온 셈이 됐네요.”

-한국도 국제학교에 관심 많은데, 뭐가 장점일까요.
“음…, 일단 영어가 기본인 학교에 다니면 자연스레 영어를 배울 수 있죠. 저도 중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해요. 뭣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를 사귀며,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게 가장 매력이지 않을까요. 고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 그룹을 떠올려보면, 미국 프랑스 핀란드 말레이시아 등 국적이 천차만별이었어요. 그런데 재밌는 게, 요즘 외국 친구들은 케이팝 같은 한국문화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오히려 제가 그들한테 배울 정도예요.”

-분위기가 그리 많이 바뀌었나요.
“한국인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어요. 초4 때쯤 ‘강남스타일’부터인 거 같은데, 한국 노래나 드라마, 영화가 폭발적으로 인기가 높아졌어요. 한국인인 걸 부러워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을 정도예요. 고교 때 학생들이 꾸미는 ‘탤런트 쇼’ 공연이 있었는데, 외국 애들이 먼저 트와이스 노래와 안무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한국에 대한 관심은 아시아 학생들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출신들도 마찬가지예요.”

권수민 씨가 2021년 5월 고교 졸업 뒤 중국 상하이로 졸업여행 갔을 때. 야경으로 유명한 와이탄에서 머금은 편안한 미소에서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사진제공 권수민 씨
권수민 씨가 2021년 5월 고교 졸업 뒤 중국 상하이로 졸업여행 갔을 때. 야경으로 유명한 와이탄에서 머금은 편안한 미소에서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사진제공 권수민 씨
-본인이 공부를 잘한다는 건 언제 알았나요.
“에구, 갑자기 훅…. 되게 민망하네요. 사실 중학교 초반까진 잘 몰랐는데, 선전에 있는 학교로 옮긴 뒤론 성적에 따라 상을 줬어요. 그때부터 조금은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겸손하네요. 서울대를 아무나 가나요.
“음…, 개인적으로 한국에 살건 해외에 살건 좋은 대학을 가려면, 보통 노력으로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 같아요. 고교 때 저희도 ‘3당4락’이란 말이 있었어요. 세 시간 자면 붙고,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내신은 물론 IB도 준비하고, SAT(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 HSK(중국어능력시험) 토플 등도 다 점수 따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했어요. 교내 동아리 활동도 8, 9개 정도 한 거 같아요.”

-동아리라면 어떤 건가요.
“가장 열심히 한 건 ‘모의UN’이었어요. 국제학교 연합에서 운영하는 해외대회도 참가했죠. 싱가포르에서 열린 대회는 200명 정도 참석했는데 연설도 하고 토론도 열정적으로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원래 약간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그런 공개 석상에서 활동하며 자기 의견을 말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하우스 빌딩 클럽’도 좋았는데, 필리핀의 낙후 지역 같은 곳에 가서 집 지어주는 봉사활동이에요. 연극부와 배드민턴부, 방송부, 경제이슈 공부하는 이코노미스트 부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권수민 씨가 2021년 중국 선전 셔코우 국제학교를 졸업할 당시. 뒤에 보이는, 수민 씨가 고른 나폴레옹의 명언이 눈길을 끈다. 흔히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로 알려진 이 말은 “불가능은 어리석은 자의 사전에만 실리는 단어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사진제공 권수민 씨
권수민 씨가 2021년 중국 선전 셔코우 국제학교를 졸업할 당시. 뒤에 보이는, 수민 씨가 고른 나폴레옹의 명언이 눈길을 끈다. 흔히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로 알려진 이 말은 “불가능은 어리석은 자의 사전에만 실리는 단어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사진제공 권수민 씨
-IB 만점자라는 타이틀도 있어요.
“쑥스럽긴 한데, 저한테 도움이 많이 돼요. 그 덕에 지금 과외로 돈 벌고 있거든요. 생활비나 연기학원 수강료 등을 제 손으로 해결하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한국에서도 IB가 꽤 알려진 거 같아요. 총 6개 카테고리가 있는데, 문학 외국어 사회과학 자연과학 수학 예술로 나뉘어요. 카테고리마다 점수를 다 따고 논문도 통과해야 점수를 받는데, 운이 좋았는지 총 45점 만점을 받았어요.”

-그 점수면 미 아이비리그도 갈 수 있지 않나요.
“입학심사에서 꼭 IB만 보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유리한 건 맞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좋은 성적으로 왜 굳이 한국에 가냐’며 만류하는 학교 선생님도 계셨어요. 영국 명문대를 추천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대학은 무조건 한국으로 가려고 오래 전부터 맘먹고 있었던지라 전혀 망설이지 않았어요. 서울에 와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배우가 되려는 꿈 말이죠.
“네, 맞아요.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요. 빨리 한국 와서 아빠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배우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제 인생 목표는 좋은 배우가 되는 거니까요. 다만 연극영화학과를 선택하지 않은 건 연영과를 가지 않더라도 연기학원 등을 다니며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서울대도 영화학과가 생긴다는 얘기가 있어서 총장님한테 메일을 보내긴 했어요. 총장실에서 답을 주시긴 했는데,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총장한테 편지 보내는 대생은 처음 봤어요.
“하하, 좀 그런가요. 외국에선 헤드마스터한테 메일로 질문하는 게 일상이라 저도 자연스럽게 그랬나 봐요. 현실적으로 배우의 길이 금방 열리는 게 아니니까, 제가 준비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해야 한단 생각에…. 그만큼 저한텐 절실하거든요. 배우의 꿈을 두고 정말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지겨울 정도로 싸워서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여기에 100%를 던지지 못한다면 그건 저 자신은 물론 아빠 엄마한테도 미안한 일이잖아요.”

지난해 가을 촬영한 독립영화 ‘침묵’의 한 장면. 권수민 씨는 주인공 예림 역할을 맡았다. 이 작품은 올해 2월 KBS 열린채널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사진제공 권수민 씨
지난해 가을 촬영한 독립영화 ‘침묵’의 한 장면. 권수민 씨는 주인공 예림 역할을 맡았다. 이 작품은 올해 2월 KBS 열린채널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사진제공 권수민 씨
-어릴 때부터 싸웠다면, 배우를 꿈꾼 게 오래됐군요.
“2010년 방영된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본 뒤에 배우라는 직업에 푹 빠져버렸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니까 부모님은 저러다 말겠지 싶었나 봐요. 하지만 연극부에도 들어가고 더 열정적으로 하니까 그때부터 만류가 거세진 거죠. 10년 넘게 정말 지겨울 정도로 싸웠어요. 다 절 생각해서 하신 말씀인 건 알지만, 그중엔 마음의 상처가 된 말도 꽤 있었어요.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덤덤하긴 한데, 가끔은 그냥 좀 울컥하기도 해요. 이젠 이해도 하시고 대놓고 반대하시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극 찬성하진 않으시죠.”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고생할까 봐 그러신 거겠죠.
“제가 그걸 왜 모르겠어요. 아마 똑같은 상황에서 제 딸이 그런다면 저도 아마 말리지 않았을까 싶긴 해요. 제가 외모가 특별하게 빼어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연기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니까요.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니 그걸 잘 살리면 당연히 훨씬 ‘꽃길’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가시밭길인들 어쩌겠어요. 제가 가고 싶은 길은 그쪽이 아닌데. 발을 찔리고 피눈물을 흘려도 배우의 길을 가는 게 너무 좋은걸요. 그럼 그게 저에게는 진짜 꽃길이 아닐까요.”

-아직 스무 살인데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거죠.
“네. 아직 어린데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 인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가끔 남들에게도 인정받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저를 상상해보기도 해요. 그럼 바로 드는 생각이, 평탄한 삶이겠지만 두고두고 연기하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겠구나 싶어요. 평생 아쉬움을 가슴에 가득 묻어두고 사는 게 진짜로 잘 사는 걸까요. 물론 연기를 택했다고 제가 바라는 대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신기루 같은 허황된 꿈을 좇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제 꿈이잖아요. 그럼 가봐야죠. 직접 해보고 직접 실패도 해봐야죠.”

(하편에서 계속)

[나의 옛날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권수민 씨가 보내준 첫 번째 사진은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참여한 학예회 때라고 합니다. 다섯 살 아이의 진지한 눈빛에서 지금도 춤과 무대를 사랑하는 수민 씨의 끼와 열정이 살짝 엿보이지 않나요. 사진제공 권수민 씨
[나의 옛날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권수민 씨가 보내준 첫 번째 사진은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참여한 학예회 때라고 합니다. 다섯 살 아이의 진지한 눈빛에서 지금도 춤과 무대를 사랑하는 수민 씨의 끼와 열정이 살짝 엿보이지 않나요. 사진제공 권수민 씨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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