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연합국 사이의 갈등을 막았을 뿐 아니라 세계 화물운송의 안전을 자국 내 상거래처럼 보호했다. 이 덕에 어느 대륙에 있는 어느 나라든 세계 각지의 대양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장거리 해상운송의 안전성이 담보되자 운송비는 저렴해졌고, 이는 세계의 분업화를 촉진했다. 군사 경쟁을 벌이던 제국들은 경제적인 상호 협력 관계가 됐고, 새로운 체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동안 경제 성장과 안정을 가져왔다. 이른바 ‘75년 황금시대’다.


미국의 역할이 사라지면 각국은 자국이 포함된 공급사슬과 자국 시장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이같은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지역으로 저자는 동아시아를 지목한다. 손해가 가장 큰 건 중국이다. 에너지에 대한 접근과 원자재 수입 등이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의 인구 고령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무역 해상로의 안전을 미국에 의존하면서 제조업 공급사슬의 수혜를 봐 왔던 한국과 대만도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경우 출산율 하락이 일본보다 20년 늦게 시작됐지만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문제가 더욱 크다.
심지어 저자는 ‘기근의 시대’가 돌아올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농업에 필요한 연료, 비료 등 모든 공급 체계를 갖춘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뿐이다.
미국 주도 안보 체제의 와해와 맞물려 인구 감소도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위기다. 2020년대 세계적으로 근로 연령층이 대거 은퇴하지만 이들을 대신할 청년층은 턱없이 적다. 이같은 인구 구조의 붕괴는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저자는 “브레튼 우즈 협정이 가속화한 전 세계의 도시화, 문명화가 출산율을 저하시켰기 때문”이라며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이 인구구조 붕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