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과 무가는 영성과 위로 담긴 예술 같은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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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광―경계의 시선’
소리꾼 추다혜 ‘가짜무당’ 변신
지역 무가에 민요-재즈 등 녹여
콘서트-연극 뒤섞은 퍼포먼스 연출

‘광―경계의 시선’의 주인공은 무당, 키워드는 위로다. 추다혜는 “무당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노래와 이야기로 누군가를 위로하며 살아가는데, 이 지점이 창작자인 나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광―경계의 시선’의 주인공은 무당, 키워드는 위로다. 추다혜는 “무당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노래와 이야기로 누군가를 위로하며 살아가는데, 이 지점이 창작자인 나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신이 온다 신이 난다/부정이 많다 부정을 씻자/새도림(새를 쫓아낸다는 의미의 제주 방언)으로 부정을 씻자/새도림으로 넘어가자”(‘오늘날에야’ 중)

느릿한 베이스 사운드에 민요와 록 발성을 오가는 중저음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검은 가죽재킷을 입고 머리엔 독특한 장신구를 올린 소리꾼 추다혜(37)가 무가(巫歌·무당이 굿에서 부르는 노래)를 부르자 무대는 한바탕 제의가 벌어지는 굿판이 된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모노드라마 ‘광―경계의 시선’에서 소리꾼 추다혜가 ‘가짜 무당 마틸다’로 변신했다. 공연의 한 축은 무속인 할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에 신내림을 받은 한 소년 무당의 인생 서사, 다른 한 축은 무가와 민요, 록, 재즈 등을 결합한 노래 13곡(8개의 신곡과 5개의 ‘추다혜차지스’ 앨범 수록곡)의 향연이다. 콘서트와 연극, 뮤지컬을 뒤섞은 것처럼 공연 장르는 특정하기 힘들다. 추다혜는 “이야기와 노래를 오가는 재담극에 퍼포먼스를 더한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서도민요(평안도 황해도 민요)를 전공한 추다혜는 민요를 기반으로 음악 작업을 해온 국악창작자다.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등과 민요 록밴드 ‘씽씽’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6년 아홉 살에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 이찬엽의 무가를 접한 뒤 ‘무가 음악’이라는 색다른 장르의 길을 걷게 된다. 2019년 이시문(기타),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과 함께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하고 무가와 밴드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으로 채운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2020년)를 발표했다.

최근 그의 작업물이 고스란히 담긴 ‘광―경계의 시선’에서 무당은 한없이 외로운 존재로 묘사된다.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무당을 찾지만 평소엔 손가락질을 하고 피해 다닌다. 신곡 ‘아는 사람’에는 외로운 무당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속 모르는 말들과/쓸데없는 웅성임…그저 너무 외로울 땐/같이 노래나 부르자.” 그는 “항상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누가 빌어줄까 싶어서 한번쯤은 많은 사람 앞에서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극에선 함경도, 제주도, 황해도 등에서 부르는 무가에 민요, 펑크, 재즈, 록, 명상음악까지 여러 장르를 아우른 음악이 이어진다. 현대음악을 하면서도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무가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누군가를 달래주고 풀어주는 굿과 무가는 곧 영성과 위로가 담긴 예술과 같은 게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구성, 연출, 음악감독, 출연까지 추다혜가 책임진 공연은 75분간 이어진다. 공연이 끝날 무렵 그는 “한바탕 굿판을 보았으니 신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신나게 놀아야 한다”며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을 이끌어낸다.

“전 무대에 서지 않으면 실제로도 몸이 아프거든요.(웃음) 신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풀어내는 사명, 그에 걸맞은 재능, 사람들 앞에 서는 즐거움을 제게 준 것 같아요.” 12일까지, 전석 3만5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모노드라마#광―경계의 시선#소리꾼 추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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