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의 ‘빅 브러더’는 누구의 가치를 대변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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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질리안 요크 지음·방진이 옮김/440쪽·1만9800원·책세상

2011년 이집트 카이로 타히르 광장에 모인 반정부 시위대의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독재 정권에 맞선 이들은 직접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아랍의 봄’을 이끌었다. 저자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거대 플랫폼 기업이 세계 각국
 정부와 결탁해 게시물을 검열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2011년 이집트 카이로 타히르 광장에 모인 반정부 시위대의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독재 정권에 맞선 이들은 직접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아랍의 봄’을 이끌었다. 저자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거대 플랫폼 기업이 세계 각국 정부와 결탁해 게시물을 검열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2007년 캘리 로먼이라는 여성은 갓 태어난 딸아이에게 모유 수유하는 모습을 촬영해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며칠 뒤 페이스북은 그의 동의 없이 사진을 삭제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성의 가슴이 드러난 외설물이라고 판단한 것. 유해 표현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한다는 소셜미디어의 방침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다.

디지털 시대 검열의 주체가 바뀌었다. 15년 넘게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등 플랫폼 기업의 검열 실태를 연구해온 저자는 과거에는 정부가 불온 표현물을 통제해왔다면 이제는 그 역할을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대신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2011년부터 디지털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비영리기구 전자프런티어재단에서 활동한 저자는 플랫폼 권력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백인 남성 중심에 기독교 가치관이 지배하는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한 플랫폼 기업들이 규정한 검열 원칙에는 인종, 젠더, 종교 편향성이 내재돼 있다는 지적이다.

플랫폼 기업은 유해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보호는 편향적으로 이뤄졌다. 2014년 이스라엘 법무장관이 팔레스타인인을 향해 “그들은 죽어 마땅하다. 그래야 더는 테러리스트들을 출산하지 못할 테니까”라는 혐오 표현물을 올렸지만, 페이스북은 ‘테러리스트는 혐오 발언 금지 조항에서 보호하는 집단이 아니다’라며 해당 글을 삭제하지 않았다. 3년 뒤 2017년 영국 가디언이 입수한 페이스북 내부 파일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외국인’ ‘노숙자’와 함께 ‘시온주의자’를 국제·지역적으로 취약한 집단으로 상정해 보호한 반면 ‘흑인 아동’과 ‘팔레스타인인’은 보호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저자는 플랫폼 기업이 정부와 결탁해 검열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국가에서 세속화를 방지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대한 접근 권한을 제한하자 거대 플랫폼 기업은 시장을 지키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튀르키예(터키)처럼 인구 8400여만 명에 이르는 거대 시장을 놓치는 건 손해였기 때문이다. 결국 구글은 정부의 콘텐츠 삭제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2009년 구글이 발표한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6개월간 세계 각국 정부로부터 1000개 이상의 콘텐츠 삭제 요청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는 이슬람교와 정부를 비판하는 표현물이 게시되는 순간 검열 받는다.

저자는 민중이 플랫폼 검열 권력의 최종 감시자가 되는 것이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2008년 페이스북에서 열린 ‘엄마들의 국제 모유 수유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1만1000여 명에 이르는 엄마들은 자신의 프로필을 모유 수유 사진으로 바꾸며 “모유 수유는 외설적이지 않다”고 저항했다. 페이스북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5년 모유 수유 이미지는 외설적이지 않다고 자사 규정에 명시했다. 민중이 소셜미디어의 힘을 역이용해 민간기업의 규정을 바꾼 것. 민중이 뭉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검열 카르텔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사례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플랫폼#빅브라더#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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