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정보라, 부커상 불발에도…“해방감·안도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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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5월 27일 10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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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2 부커상 시상식에 참석한 정보라 작가(왼쪽)와 안톤 허 번역가. 그린북 에이전시 제공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2 부커상 시상식에 참석한 정보라 작가(왼쪽)와 안톤 허 번역가. 그린북 에이전시 제공
정보라 작가(46)의 소설집 ‘저주토끼’의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이 불발됐다.

부커재단은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이벤트홀인 원메릴본에서 열린 2022 부커상 시상식에서 인도 작가 지탄잘리 슈리의 ‘모래의 무덤’(Tomb of sand)을 2022년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이 작품을 영어로 옮긴 미국 번역가 데이지 록웰도 상을 받았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2005년 신설된 인터내셔널 부문은 비영어권 작가들의 영어 번역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상금 5만 파운드(약 8000만원)가 작가와 번역가에게 똑같이 돌아가는 만큼 번역가의 역량도 중요한 요소다.

수상작 ‘모래의 무덤’은 이 부문 17년 역사에서 힌디어책으로는 처음으로 최종 후보에 올랐는데, 수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남편의 죽음으로 우울증에 빠진 80세 인도 여성이 새로운 삶을 찾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진지한 주제에도 슈리의 가벼운 터치와 풍부한 말투가 작품을 독창적으로 만든다”고 소개했다.

정 작가는 저주와 복수에 관한 단편 10개를 모은 소설집 ‘저주토끼’로 지난 3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 13명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4월 최종 후보 6명에 포함됐다.

앞서 2018년 한강의 ‘흰’과 2019년 황석영의 ‘해질 무렵’도 각각 최종, 1차 후보에 포함됐으나 상을 타진 못했다.

이에 따라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후 6년 만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호명될지 기대를 모았으나 결과는 아쉬웠다.

비록 수상엔 실패했으나 정 작가를 향해 한국 장르문학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작가는 시상식 후 “상을 타거나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믿는 가치와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쓰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주토끼’의 해외 판권 업무를 담당하는 그린북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 문학을 포함해 모든 문학과 예술은 포부를 갖지 않을 때 가장 많은 성취를 이룬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수상 실패에 대한 아쉬움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는 되레 “상을 받지 않아 종일 언론 인터뷰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게 됐다”며 “시상식 종료와 함께 해방됐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야 마음 놓고 런던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당장 6월30일까지 번역 마감을 해야 하고 7월 말, 8월 말까지 단편과 번역 마감도 해야 하는데 일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얻은 것 같아 안도감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저주토끼’를 영어로 옮긴 안톤 허(본명 허정범·41)도 한국인 번역가로는 처음 공동 후보로 지명됐다. 허 번역가는 ‘저주토끼’와 함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포함된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도 영어로 옮겼다.

허 번역가는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기지 않고 행복하다. 앞으로 계속 번역을 하면서 내 글도 쓰겠다”고 했다.

아울러 이들은 진심으로 시상식 기간을 즐겼다. 영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등에 능숙한 정 작가는 다른 최종 후보작을 직접 읽고, 후보들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등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세계 문학의 쟁쟁한 플레이어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반가워하고 적극적인 네트워킹을 도모했다고 김서형 그린북 에이전시 대표는 전했다.

‘저주토끼’의 영어판을 펴낸 영국 출판사 혼포드 스타는 정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 ‘붉은 칼’(2019)과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2021)의 영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 두 권의 책 역시 허 번역가의 손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정 작가는 오는 6월 초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 후 당분간 밀린 번역과 집필에 매진할 계획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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