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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애도-슬픔 다루는 법… 가르쳐줄 누군가가 필요해”

입력 2022-01-27 03:00업데이트 2022-01-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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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연소 수상 레이네펠트 인터뷰
3세때 12세 오빠 여읜 경험후,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소설 갈망
‘그날저녁의 불편함’ 6년걸려 완성, 애도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
부모가 자식 잃은 슬픔 못견디고, 남은 아이들 방치하는 현실 그려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는 “독자가 ‘그날 저녁의 불편함’을 읽는 동안 네덜란드의 시골 풍경을 손끝에 느끼기를 바란다”며 “지금은 새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JEROEN JUMELET ANP via AFP
한겨울 네덜란드의 한 농촌 마을. 10세 소녀 야스의 집에 이웃집 아저씨가 찾아온다. 아저씨는 야스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오빠가 죽었다”고 전한다. 동네 호수에서 열린 스케이트 대회에 나간 오빠 맛히스가 호수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에 빠져 사망했다는 것. 야스의 엄마와 아빠는 “죽었을 리 없다”, “곧 돌아올 거다”라며 현실을 부정한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스는 그날 입고 있던 빨간 코트를 한여름이 될 때까지 벗지 못한다. 점점 야스 가족의 삶은 파국으로 치닫는데…. 최근 국내에 출간된 장편소설 ‘그날 저녁의 불편함’(비채·사진)의 내용이다.

이 작품을 쓴 네덜란드 작가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31)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3세 때 12세이던 오빠를 여의고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며 “소설 내용은 내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이 책은 2020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역대 최연소 수상자였다. 2016년 한강 작가가 이 상을 받았다.

“소설을 완성하는 데 6년이 걸릴 정도로 치열하게 썼어요.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 애도의 감정이 땀구멍 하나하나에 스미기를 바랐죠. 부커상 수상 소식을 들은 직후엔 욕조 안에 앉아서 ‘이 일은 평생 못 잊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나도 뭔가 해낼 수 있어’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야스의 부모는 맛히스의 죽음을 신이 내린 형벌이나 저주로 여기고 일상을 완전히 포기한다. 이 과정에서 야스는 방치된다. “이야기를 생생히 겪게 하는 소설”이라는 부커상 심사평처럼 소설은 야스의 처절한 감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동 방치 실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소설 속에서 부모는 죽은 아들에 대한 크나큰 슬픔 때문에 남은 아이를 돌볼 수가 없다”며 “부모가 자기 문제를 견디지 못해서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일이 현실의 많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부모도 스스로의 슬픔에 빠져 죽어가곤 한다”며 “아이들에 대한 미움이 아닌 부모의 무력함 때문에 벌어지는 방치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피폐해진 야스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괴롭히고, 압정을 몸에 박는 자해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슬픔을 푼다. 한편으론 부모가 자신을 안아주기를, 부모에게 기대기를 끊임없이 갈망한다. 벼랑 끝에 선 여느 아이들처럼. 왜 이토록 슬픈 소설을 썼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이들의 애도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애도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데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애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때로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만 악의에서 비롯된 건 아니에요. 어떻게 슬픔을 다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뿐이죠. 애도, 고통, 슬픔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줄 누군가가 아이들에겐 필요하죠.”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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