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추사의 위대함은 제주 유배시절 완성됐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8-14 03:00수정 2021-08-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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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평전/최열 지음/1096쪽·5만5000원·돌베개
“김정희는 학술을 예술로 변용하는 재능에서 천재였으며 위대한 학예(學藝)주의자의 면모를 확립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언어와 문자, 그리고 형상에서 실현 가능한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천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관료, 문인, 화가, 서예가, 금석학자, 실학자, 예술학자, 불교학자….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남긴 면모는 그의 수많은 호(號)만큼이나 다채롭다. 고교생 시절 추사에 매혹된 저자는 그가 제주도에 유배된 나이와 같은 쉰다섯 살 때부터 추사의 생애와 예술의 전모를 낱낱이 들여다보는 ‘대작업’에 착수했다. 제주 시절이야말로 거장을 완성시킨 시간이었으며, 그 시기가 없었다면 김정희라는 이름이 ‘그저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로 흘러갔을지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의 방대한 분량은 꼼꼼하고도 지난했던 검증의 결과물이다. 김정희와 자하(紫霞) 신위의 관계를 검증한 부분도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자하 문하에서 학예의 터전을 일군 추사는 연경에 들어가는 자하를 위해 쓴 전별(餞別)의 시에서 그를 ‘전배(前輩·선배 혹은 연장자) 앞선 무리’로 부르는 등 당시 시각에선 무례한 표현을 사용한다. 이유가 뭘까. 저자는 추사의 글들을 편찬한 후학들이 시를 변조했음을 꼼꼼한 정황과 증거로 보여준다. 그러나 추사가 자하를 ‘선생’으로 표현하며 사제지간의 연을 맺지 않았음도 밝힌다.

집요할 정도의 엄밀성은 추사의 인간관계뿐 아니라 그의 학술과 이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난을 그릴 때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글씨와 학문이 나타내는 품격)’가 있은 다음에야 될 수 있다고 한 말은 널리 회자되는 문장 중 하나다. 이 표현 또는 이론의 배경을 추적하는 집요함도 경탄을 자아낸다. 엄밀한 작업 끝에 저자는 책을 쓰면서 적용한 태도를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설명한다. 옛사람의 말을 전할 뿐 자신의 학설을 지어내지 않는다는 겸허한 자세다. 250여 컷의 방대한 도판도 추사의 면모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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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추사#김정희#제주 유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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