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소설 읽다 문득 재밌겠다 싶어…남극서 요리사 됐죠”

이호재 기자 입력 2021-08-03 14:52수정 2021-08-0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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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해’ 김인태 씨
나이 스물 넷. 열심히 취업준비를 위해 달릴 때다. 학점, 토익점수를 높이고 자격증도 따야하는데…. 준비하지 않으면 냉혹한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이때 생뚱맞게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남극에서 요리사로 일해 보는 것.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조리지원 대원으로 5개월간 일한 경험을 지난달 15일 에세이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해’(상상출판)로 펴낸 김인태 씨(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26) 이야기다.

그는 지난달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2019년 여름방학 때 남극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는 내용의 공상과학(SF) 소설 ‘남극낭만담’을 읽다 문득 남극에 가면 재밌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을 읽던 중 남극에서의 삶이 갑자기 머리 속에 펼쳐졌다는 것. “원래 저는 안전지향의 삶을 살았는데 ‘지금 남극을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남극기지에 미친 척하고 지원했는데 합격해버렸습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는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근무대원을 매년 뽑는다. 극지 연구뿐 아니라 시설관리나 조리를 담당하는 업무도 있다. 대부분 해당 분야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지만 조리지원 업무는 자격증과 1년 이상의 조리 경력만 있으면 된다. 그는 “전공인 경제학이 너무 재미없어서 2017년 군 전역 후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사흘을 이동한 끝에 2019년 11월 남극에 도착했다. 온통 새하얀 남극의 풍경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재미삼아’ 떠난 이곳은 휴양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습도가 15% 이하라 피부가 갈라지기 일쑤였고 강한 추위에 몸이 벌벌 떨렸다. 매일 오전 5시 30분 기상해 무거운 음식재료를 옮겨야 했다. 조리담당 대원 세 명이 나머지 대원과 방문객 100여 명의 세 끼를 책임졌다. 그는 “친구들끼리 한강에 가서 치맥을 즐기며 깔깔거리던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다. 도착 사흘 만에 우울증이 왔다. 엄마가 보고 싶어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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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극의 광활한 대자연이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함께 근무하는 대원들과 어울리며 점점 남극에서의 삶에 적응했다. 휴일에 대원들과 남극펭귄을 보거나 다른 해외 연구소를 방문하려 하이킹을 떠났다. 틈틈이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도 썼다. 그는 “낮이 짧고 돈 쓸 곳도 없는 남극에서 내가 무얼 위해 달려왔고 어디로 가야할지 깊이 고민했다”며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살다보면 모든 행동을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이냐는 잣대로만 판단하지만 남극에서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남극에서 근무를 마친 그는 지난해 4월 귀국했다. 학교로 복학하지 않고 스스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며 독서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남극에 다녀와서 삶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취업이나 결혼을 포기한 ‘N포’나 내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외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아니에요. 오직 재밌을 것 같아서 남극으로 떠난 ‘재미주의’에 가까웠죠.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제 생각에 확신은 생겼어요. 재밌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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