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남성 소설가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재희 기자 ,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학과 4학년 입력 2020-10-15 03:00수정 2020-10-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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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도 문학상도 여성이 휩쓸어
페미니즘-소수자 차별 관심 느는데
男작가들 변화한 사회문제 못짚자 주류 독자층인 2040 여성이 외면
“새로운 남성서사 발굴해야”
“여류 소설가가 사라졌다.”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열린 ‘2020 요즘비평포럼’은 조대한 문학평론가의 이 말로 시작했다. ‘남류 소설가: 남성 서사 되묻기’를 주제로 남성 서사의 양상과 한계를 논의한 이날, 조 평론가는 “여류 소설가라는 명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여성 작가의 약진에 대비되는 남성 작가의 부진을 ‘남류 소설가’로 갈음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80, 90년대 남성 작가가 문학계 주류이던 시대에 ‘여류’라는 표현은 공공연하게 쓰였지만 최근 몇 년간 여성 작가의 득세에 ‘남류’라는 신조어가 필요한 시대임을 역설한 것이다.

남성 작가들이 모습을 감췄다. 지난달 기준 교보문고, YES24, 알라딘의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상위 20위에는 여러 작가의 소설을 묶은 책을 제외하면 남성 작가는 각각 0명, 4명, 0명이었다. 그나마 등단한 지 오래된 조세희 김연수 이기호를 제외하면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의 한산이가뿐이다.

문학상에서도 남성 작가 열세는 계속된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김유정문학상의 최근 5년간 수상작과 후보작 113편 가운데 남성 작가 작품은 26편에 그쳤다. 노태훈 문학평론가가 지난해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소설과 주요 출판사의 단행본 소설을 분석한 결과 남성 작가 작품은 단편 316편 중 92편(29%), 단행본 92권 중 31권(34%)에 불과했다. 반면 여성 작가의 득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김유정문학상, 만해문학상, 심훈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올해 주요 문학상 수상자도 모두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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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작가의 ‘실종’은 소설 독자의 70∼80%를 차지하는 20∼40대 여성의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 변화하는 사회적 지위 등을 남성 작가들이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병국 문학평론가는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에는 촛불집회에서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교묘한 차별이 촘촘하게 드러난다”며 “오래 소외된 경험이 있다 보니 세상의 부조리를 더 세밀하게 바라보고 그런 시선을 투영한 작품이 선택을 받는 추세”라고 풀이했다. 독자 강예은 씨(23·여)는 “경력단절 같은 이슈뿐만 아니라 일상적 차별을 다루는 여성 작가의 소설이 많아지면서 작가나 등장인물이 나와 고민을 함께 나눈다고 느껴져 좋다”고 말했다.

2016년 10월 공론화된 문단 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도 남성 작가의 활동을 위축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문단에서 여성 문인이나 편집자를 대상으로 한 고질적인 성폭력이 있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유력 남성 작가들이 미투에 연루되면서 남성 작가의 활동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며 “이후 페미니즘, 성소수자 같은 소재에 관심이 커지면서 여성 작가의 여성 서사에 독자들이 더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여성 서사가 문단의 주류로 자리 잡는 데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2016년)이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미투 운동으로 문학의 사회 비판 기능이 강화돼 관련 이슈를 다룬 여성 작가 작품에 독자와 문학상이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도 있다. 신혜린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여성 서사는 늘 있었지만 미투 운동을 계기로 여성뿐만 아니라 인종, 성적 지향 등을 다룬 이야기에 더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작품의 담론 설정 기능도 따지는 문학상은 동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층위를 쫓아가는 작품을 좋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학계의 건강한 균형을 위해서는 남성 작가들이 새로운 남성 서사를 발굴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우미성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남성의 특권을 내려놓고 서사를 풀어낸 ‘미생’이 큰 인기를 끌었듯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서사가 만들어진다면 입지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4학년
#2020 요즘비평포럼#남성 소설가#미투운동#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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