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범들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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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사람들/제임스 도즈 지음·변진경 옮김/356쪽·1만9000원·오월의봄

1957년, 중국 푸순 수용소에서 석방돼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군 포로들이 ‘중국귀환자연락회’를 조직했다. 회원 대부분이 나이 먹어 활동하기 힘들어진 2002년까지 모임은 이어졌다.

미국 대학에서 영문학과 인권, 폭력 문제에 대해 강의해온 저자가 이 ‘귀환포로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

중국에 간 일본군은 악마가 되었다. 아이 안은 엄마를 쏘거나 우물에 던지고, ‘누가 더 많이 강간했나’를 경쟁하고, 잡힌 농민들에게 창자 봉합이나 사지 절단 수술을 실험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다 둔감해졌고, ‘실적’과 출세를 의식하게 되었고, 명령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도쿄대에서 칸트를 전공하며 ‘내 머리 위엔 빛나는 별, 내 마음 속에는 빛나는 도덕률’을 가슴에 새기던 젊은이도 똑같았다.

이 증언들을 통해 저자는 ‘여러 대학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정치 문화적 특징은 무엇인가,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조직적 심리적 과정은 무엇인가, 나아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고자 했다고 말한다.

저자 자신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작업이 ‘전쟁 트라우마를 인권 포르노로 만들어버릴까’라는 회의를 그치지 않는다. 중단할 수는 없었다. 책에 인용한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유대인에게 행한 대학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신성모독이고 피해자에게 잘못하는 것이라면, 침묵하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잘못이며 신성모독이겠는가’라는 말이 그의 자세를 대변한다.

일본은 지금도 정부 각료가 난징대학살을 ‘날조’라고 우기고, 총리는 한국 여성들이 전쟁 중 성노예로 동원된 사실을 부인한다. 생체실험의 주범들은 많은 수가 일본 의료계에서 출세의 길을 달렸다. 반면 양심적 증언을 이어간 귀환자 연락회 회원들은 ‘중국에서 세뇌되었다’며 경찰이 따라다녔다.

‘위안부 피해자 위로금을 민간기금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은 국가(일본)의 책임 인식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전형적 후원자-수혜자 관계로 만든다’는 지적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악한 사람들#제임스 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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