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남북문제 관심 없는데서 ‘강철비’ 시작”…회담장소가 잠수함인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9일 14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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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문제를 바라보는데 있어 우리는 언젠가부터 표정을 잃었다.”

영화 ‘강철비2:정상회담’(정상회담)으로 3년 만에 돌아온 양우석 감독(51)의 말이다. 개봉을 하루 앞둔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양 감독은 “30여 년에 걸친 화해와 긴장 모드의 반복으로 지쳐버린 우리나라 국민들이 더 이상 남북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강철비’의 시작”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양 감독은 10여 년간의 데이터 수집을 토대로 분단 상황에 처한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네 가지 상황인 전쟁, 핵무장, 북한 정권 붕괴, 비핵화를 웹툰 ‘스틸레인’ 시리즈에 담았고, 이를 영화화했다. ‘강철비’(2017)는 전쟁과 한국의 핵무장을 가정했다면, 정상회담은 북한 정권의 붕괴와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을 통한 평화적 비핵화를 그렸다. 핵무기 포기에 반발한 북 호위총국장 박진우(곽도원)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인질로 잡혀 핵 잠수함에 갇힌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정우성), 북한 위원장 조선사(유연석), 미국 대통령 스무트(앵거스 맥페이든)의 ‘벼랑 끝’ 정상회담이 펼쳐진다.

“1993년 북핵 위기로 전쟁 직전까지 갔던 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한반도는 미중 대격돌의 한 가운데 껴있다. 한국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활발하게 분단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한국을 살릴 수 있는 건 상상력이다.”

‘남북미 정상회담’을 소재로 정한 뒤 양 감독이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공간’이었다. ‘이들이 어디에 모여서 정상회담을 해야 가장 긴장감이 넘칠까’를 고민하던 양 감독은 ‘최종병기’라 불리는 잠수함을 택했다. 탈출 불가능한 극한의 상황에 놓여 비좁은 공간에서 총을 겨누는 잠수함 속 상황이 한반도가 처한 현실과 비슷하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잠수함의 거주공간은 82㎡(25평) 남짓이다. 이 곳에 40여 명의 마초적인 사내들이 모여 사는 것이다. 장소가 쾌적하고 넓을수록 남성들의 회담 성공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잠수함이 남자에게는 가장 지옥 같은 회담 장소인 셈이다. 탈출이 가장 어렵고, 언제 풀려날지도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싶었다.”

양 감독은 한국 영화 중 최초로 ‘크로스캐스팅’을 시도했다. 강철비에 출연한 등장인물이 정상회담에 그대로 등장하는데, 남북 진영을 바꿨다.

“북한 요원을 연기한 정우성은 남한 대통령으로, 남한 외교안보수석을 연기한 곽도원은 쿠데타의 중심에 선 북 호위총국장을 연기했다. 남북이 입장을 바꾼다 해도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의지로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양 극단을 달리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한경재 대통령 역의 정우성과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한경재는 평화협정이라는 목표를 위해 목숨까지 내거는 희생과 용기를 보여준다. 침묵 속 강단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정우성의 액션 신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한경재와 링컨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링컨은 노예해방법안의 통과를 위해, 한경재는 평화협정을 위해 양보하고 인내한다. 그래야 가장 큰 목표를 쟁취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지도자는 참고 인내하는 지도자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한경재는 영화에서 그려진 대통령 중 가장 강인한 대통령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를 그린 ‘변호인’으로 입봉한 양 감독은 차기작으로 삼양식품의 전중윤 회장의 삶을 그린 웹툰과 영화를 동시에 준비 중이다. 제목은 ‘면면면’(Era, Face and Noodle). 초고를 쓰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세계 어느 국가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감소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인구절벽 문제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다. 데이터와 고증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이 그가 만드는 이야기의 원천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이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을 일군 기업인들의 삶도 흥미로운 소재다. 인물을 프리즘으로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는 작업도 계속 하고 싶다.”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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