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빠는 이런 사람이었단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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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조 하몬드 지음·지소강 옮김/280쪽·1만4000원·한문화

“잘 보렴. 면도기를 한 손으로 이렇게 단단히 쥐고 턱 아래에서 위쪽으로…. 아니면 위에서 아래쪽으로. 어느 방향이든 좋아. 하지만 절대로, 손을 옆쪽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

영화 ‘마이 라이프’(1993년)에서 신장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 밥 존스(마이클 키튼)가 어린 아들을 위해 남긴 영상메시지다. 성장하는 매 순간 자신의 부재를 실감할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저자는 존스처럼 확정된 죽음을 기다리던 인물이다. 영국 런던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2017년 운동신경질환 판정을 받은 뒤 손쓸 길 없이 쇠락해 가는 몸을 지탱하며 자신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일곱 살과 두 살 난 두 아들에게 ‘너희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어’라고 알려주는 긴 글을 남긴 것. 그는 책이 출간되고 2개월 뒤인 지난해 11월,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이 이렇게 흥미로운 일이라는 걸 진작 알았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장례식에 여러 번 가봤지만 언젠가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의식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즐거운 여정이라도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끝을 맞이한다는 인식이 없으면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만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아내 길과 오래전 함께 썼던 유언장을 꺼낸다. 죽음을 먼 일로 여기고 있던 시절에 그들은 ‘인도 히말라야산맥에 유해를 뿌려 달라’는 소망을 적었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직시했더라면 내리지 않았을 결정”이라며 집 근처의 햄프셔 숲에 묘비 없이 묻고, 무덤 옆에 벤치를 만들기로 한다.

“내 옆에 앉아 내 손을 잡아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 친구들 같은 사람이 된 적이 있는지, 이만한 이해심을 가졌던 적이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인생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끝을 통해서도 영감을 얻는 일이 가능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굿 바이#조 하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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