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 풋코와 만화가 정우열 씨는 바닷가에 자주 함께 나간다. 정 씨는 “서울에 오래 살았지만 이젠 풋코와 산책하다가 문득 찾아갈 바다가 없는 도시에서는 행복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했다. 그가 만화로 전하는 풋코의 일상 이야기는 늙은 반려견과 함께 사는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준다. 정우열 씨 제공
“풋코. 혹시 넌 알고 있었어? 요샌 내가 앞서 걸을 때가 더 많다는 거. 힘들어? 안아줄까?”
최근 출간된 만화책 ‘노견일기’(동그람이)에서 작가 정우열 씨가 올해 열일곱 살인 애견 풋코에게 산책 중 건넨 말이다. ‘올드독’ 캐릭터로 잘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인 그가 풋코와 함께 제주도에서 생활하며 겪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개의 수명은 사람에 비해 훨씬 짧다. 사람들은 강아지를 입양하면서 그 사실을 잊거나 간과한다. 늘 귀여운 강아지일 거라 여겼던 개는 시간이 갈수록 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티를 내고, 놀다가 자기가 뭐하고 있는지 잊어버린 듯 우두커니 서 있는 일이 잦아지고, 잠을 많이 자게 된다.
‘노견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수긍하고 늙은 개와 더불어 그날그날 맞이하는 일과 인연을 소중히 새기며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정 씨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풋코의 늙어가는 속도가 매일 점점 더 빨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풋코가 떠나고 나면 한동안은 개를 기르지 않을 생각이다. 원래 계획은 풋코를 보낸 뒤 먼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가능할지 모르겠다. 좀 막막한 심정이다.”
정 씨는 2003년부터 개 두 마리를 입양해 함께 살았다. 풋코의 어미 소리는 6년 전 뇌종양으로 먼저 그들 곁을 떠났다. 두 마리 개와 보낸 시간의 흔적을 주로 카메라로 기록하던 그는 소리를 보낸 뒤 ‘노견일기’를 블로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준 동반자인 풋코와의 이별을 차분히 준비하기 위한 일기인 셈이다.
“평생 다시 개를 기르지 않게 될지, 그건 모르겠다. 개를 만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운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혼자가 되면 형편 닿는 대로 유기견을 위한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날마다 유기견 수백 마리가 발생한다. 그들을 돌볼 일손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기에 늘 미안한 마음이다.”
개는 같이 생활하는 사람의 삶에 예상보다 큰 변화를 안겨준다. 정 씨는 두 개와 함께 지내며 채식주의자가 됐다. 11년 전부터 해산물, 유제품, 동물복지계란만 허용하는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개가 얼마나 지적이고 감성적인 존재인지 이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맞이한 변화”라고 말했다.
“개를 사람들이 먹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개와 소와 돼지는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개를 먹지 말아 달라’고 말하기 위해 소와 돼지도 먹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출발한 채식이다. 동물복지의 문제뿐 아니라 환경과 자원 배분 문제와도 채식이 관련 깊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아주 가끔 부대찌개 생각이 나긴 한다. 하하.”
동반자와의 작별을 늘 염두에 둔 이야기이지만 ‘노견일기’는 울적하지 않다. 좁은 연석(沿石·길의 경계석) 위로만 가려는 풋코를 따라가다가,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걸으며 보도블록 금을 밟지 않는 혼자만의 게임에 열중하던 꼬마 때 기억을 행복하게 떠올린다. 노견 풋코는 언제나 그랬듯 “못 견디게 힘든 날에도 한 번은 웃게 해 주는 존재”다.
“풋코와 함께할 수 있는 남은 시간만큼 값진 게 없다. 최대한 일을 줄이고 자주 산책을 하고 바다에 가려 한다. 동어반복이라 반성하면서도 늘 새로운 작품을 생각하고 꿈꾼다. 모두 다 소리와 풋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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