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치지 마세요”… 애드리브도 사라졌다

김기윤 기자 입력 2020-04-25 03:00수정 2020-04-25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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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새 풍속도 ‘온라인 공연’ 현장 가보니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14일 오후에 열린 ‘포르테 디 콰트로’의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 콘서트 현장. 뮤지컬 배우 고훈정은 “저희 소리가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잘 전달됐으면 한다”며 온라인 관객에게 인사를 건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박수 치지 마세요.”

14일 팝페라 가수 4명으로 구성된 ‘포르테 디 콰트로’의 ‘Only for You’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곡이 끝나는 순간마다 습관적으로 박수를 치지 말라는 경고가 떨어졌다. 박수 없는 공연이라니. 이곳은 무관중 공연 생중계 현장이기 때문이다. 박수소리 같은 ‘잡음’은 무관중 공연 생중계의 금기 중 하나다. 텅 빈 공연장에는 스태프 30여 명만 조용히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연 중계가 전기를 맞았다. 유튜브, 네이버TV, 카카오TV, 자체 채널을 통해 일부 단체에서만 진행하던 생중계는 안방 관객을 찾아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스크린 너머로 공연장의 울림과 떨림을 전하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무대에 오른 이들이 박수 대신 ‘좋아요’ ‘하트’ 클릭 세례를 받는 건 코로나19가 만든 진풍경이다. 최근 진행 중인 공연 생중계 현장을 돌아봤다.


○ 매끄러운 장면 전환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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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오후 3시 ‘힘내라 콘서트’ 시리즈로 어린이 뮤지컬 ‘허풍선이 과학쇼2’가 생중계됐다. 공연 6시간 전부터 무대 세트, 소품과 카메라 등 촬영 장비가 설치된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지난달 26일 진행한 기획공연 ‘아우내의 새’ 무관중 중계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요즘 공연계에서 가장 바쁘다는 곽기영 한국영상연합 대표가 공연장을 찾았다. 그는 약 15년 동안 600여 편의 공연 중계, 기록영상 촬영을 맡은 베테랑이다. 생중계에서 모든 과정을 총지휘하는 연출가에 가깝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있던 촬영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일 2, 3편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국공립 공연장 산하 촬영팀 외에 국내 공연 촬영업체는 100여 개지만 대·중·소극장과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업체는 손에 꼽는다.

두 시간에 걸쳐 장비 설치가 끝나고 오전 11시부터 리허설을 시작했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 숫자에 따라 카메라 수도 변한다. 이날은 총 8대의 카메라가 무대를 향했다. 곽 대표는 “리허설에서 촬영자들이 공연별 특징, 강조점을 숙지해야 한다”고 했다.

배우와 연출가는 관객 없는 현장이 낯설다. 몇몇 배우는 텅 빈 객석을 향해 연기하다가도 이따금 카메라로 눈을 돌렸다. 이성곤 연출가는 “관객 앞에서 공연할 때와 큰 차이는 없지만 장면 전환 시 포즈(멈춤)가 좀 더 발생한다. 무엇보다 관객의 박수, 함성에 따라 달라지는 애드리브가 싹 사라지니 기존 공연시간보다 20분 정도 짧아졌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관객이 없으니 배우들 간의 호흡에 중점을 두게 된다”고 했다.

생중계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음향, 카메라를 최종 점검한다. 배우들에게 “특정 장면에서는 빨간 불이 들어오는 ○번 카메라를 보라”는 지침도 전달한다. 한 인디밴드는 리허설 중 멘트 없이 노래만 한 적도 있었다. 이럴 땐 “간단한 밴드 소개나 곡 소개도 해 달라”고 당부한다. 어떤 공연인지 잘 모르고 클릭한 관객이 온라인에는 많기 때문이다.

공연 30분 전부터 스폿 영상이나 예고 영상 송출을 시작한다. 먼저 접속한 관객에게 안내 겸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김준원 한국영상연합 기술감독은 “공연 중계의 핵심은 매끄러운 장면 선택과 전환이다. 송출에 기술적 결함이 없는지 계속 확인한다”고 했다.

막이 오르면 가장 바빠지는 이는 곽 대표다. 여러 화면 중 어떤 걸 송출할지 그가 결정한다. 그는 2∼3초마다 “3번 카메라 당겨주세요” “풀샷 띄워주세요” “지미집, 다음은 5번으로 배우 얼굴” 등을 외쳤다. 실제 공연과 송출 화면은 10∼15초의 시차가 발생한다. 일부 공연에서는 스태프가 관객과의 채팅에 참여해 다음 곡을 안내하거나 자막을 띄우기도 한다. 장르별로 중점을 두는 부분도 다르다. 뮤지컬, 연극, 오페라, 창극은 드라마적 표현을 담기 위해 배우의 연기와 조명 변화, 무대 영상에 집중한다. 국악, 클래식은 지휘자나 파트별 연주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무용에서 무용수의 얼굴 클로즈업은 최소화하고 전신이나 군무처럼 몸짓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콘서트의 경우 보컬은 60∼70%, 연주자는 30∼40% 비중으로 촬영한다.

녹화 중계는 공연 순서를 편집하거나 재촬영할 수 있다. 16일 오후 3시에 녹화 중계한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토크콘서트는 14일에 촬영됐다. 마무리 무대 인사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여러 번 촬영했다.

공연이 막을 내려도 채팅창에는 여운이 가득하다. “요즘 같은 때 감사하다” “공연보다 저녁 반찬 다 태웠다”는 글이 줄을 잇는다. ‘좋아요’ 클릭도 초 단위로 늘어난다. 얼마 뒤 공연장에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스태프 간의 인사가 오가면 화면 송출도 끝난다. 온라인 관객들도 발걸음을 돌릴 시간이다.

○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

국내 공연 중계는 서울 예술의전당이 ‘예술의전당 콘텐츠 영상화사업(SAC on screen)’을 통해 2013년 첫선을 보였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는 CJ ENM과 공연 중계 사업 ‘집콘’을 추진하고 나섰다. 초기에는 “관객, 현장이 핵심인 공연을 누가 온라인으로 보겠느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공연장에 가기 어려운 이들이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네이버TV는 2015년부터 쇼케이스 전막, 공연 실황 등 320여 편을 중계했다. 2016년 11월에 진행한 ‘조성진 피아노와의 대화’는 조회수가 7만 회가량 됐다. 해를 거듭하며 온라인 관객은 증가했다. 2018년 연극 ‘연애플레이리스트’ 공연 실황은 8만9000회, 올해 3월 뮤지컬 ‘마리 퀴리’ 실황 녹화중계 조회수는 21만 회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 대부분이 취소되면서 영상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9년 네이버TV가 한 해 동안 중계한 공연은 총 67회였다. 올해는 1월부터 4월 22일까지만 따져도 54회나 된다. 지난해 총 108만 회였던 누적 조회수는 올해 이미 143만 회로 크게 늘었다. 작품 한 편당 평균 조회수도 작년보다 64% 증가했다. 최근 카카오TV를 통해 진행한 뮤지컬 ‘웃는 남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츠 프로브(배우와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추는 연습), 프레스콜(언론 대상으로 공연 하이라이트를 시연) 중계도 플레이 수 10만 회를 훌쩍 넘었다. 함성민 네이버 공연&그라폴리오 리더는 “한 달에 7, 8회 하던 중계가 4, 5월에만 총 45편으로 늘어난 걸 보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경기아트센터, 남산예술센터 등이 진행한 무관중 스트리밍, 온라인 전막 상영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오정화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은 “온라인 중계를 통해 공연장을 찾지 않던 이들의 관심을 높여 잠재적 관객을 확보하고 코로나19 사태로 피해가 큰 예술인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 콘텐츠 유료화도 조심스레 논의되고 있다. 일단 플랫폼의 기술적 여건은 갖춰진 상태다. 넷플릭스, 인터넷TV(IPTV)도 공연 기관, 제작사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장르, 배우별 출연료, 참여 제작진 규모에 따라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며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가격을 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저작권, 수익분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공립기관을 중심으로 최근 논의가 진행 중이다. 중대형 민간 뮤지컬 제작사도 공연 영상화를 통한 새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데 적극적이다.

다만 관객을 현장에서 배제하는 데 따른 우려도 나온다. 한 극단 대표는 “연극의 3대 요소가 희곡 배우 관객인데 이 중 하나인 관객이 현장에서 없어지기 때문에 스트리밍을 안 했으면 좋겠다. 온라인 공연에 가상 배우가 나와도 진정한 공연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관객층 넓히고 수익도 창출

영국 국립극단의 ‘NT Live(National Theatre Live)’와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메트 라이브(The Met: Live in HD)’는 공연 영상화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09년 시작한 NT Live는 영미권 연극계 화제작을 촬영해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세계 2000여 개 극장에서 55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국내에서도 2014년 국립극장이 처음 도입해 총 20편을 선보였고, 올해 2월까지 누적 관객 수는 6만1856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공연으로 꼽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메트 라이브’를 수출한다. 2006년부터 50여 개국에서 매년 관객 수백만 명과 만난다. 국내 극장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2008년부터 ‘디지털 콘서트홀’을 운영하며 막대한 영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단체로 유명하다.

공연 영상 콘텐츠의 매력은 생생한 화면과 추가 공개 영상이다. 여러 각도에 설치한 카메라는 배우, 연주자의 섬세한 움직임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메트 라이브는 최대 12대, NT Live는 최대 8대의 카메라를 쓴다. 공연 시작 전이나 인터미션에는 배우 인터뷰를 내보내거나 무대 뒷모습도 공개한다.

국내 공연 영상 사업은 서울 예술의전당이 앞서가고 있지만 공연계 전체로 보면 초기 단계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 영상화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관련 예산은 늘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공연 영상화 작업은 보다 많은 관객이 다양한 공연을 수월하게 즐길 수 있어 공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며 “장비와 인력, 기술을 보강해 공연 현장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추가적인 힘을 지닌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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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무관중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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