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수 이후 흔들린 한돌…AI의 버그인가 이세돌의 묘수인가

  • 뉴스1
  • 입력 2019년 12월 18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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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인공지능(AI) ‘한돌’이 당초 예상을 깨고 이세돌(36)의 기세에 눌려 힘없이 무너졌다.

이세돌의 78수 이후 한돌이 크게 흔들린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두고 일부 프로기사들 사이에선 ‘축 버그’가 일어난 것 같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돌은 18일 서울 바디프랜드 도곡 본사에서 열린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1국에서 이세돌을 상대로 92수 만에 백 불계패했다.

3번기 치수고치기로 치러지는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은 흑을 잡고 두 점을 깔고 시작했다. 이날 이세돌은 초반부터 특유의 발 빠른 행마로 실리를 확보하며 2점 접바둑의 우세를 지켜갔다.

50수까지 서로 실수 없이 팽팽하게 진행된 상황에서 집이 부족한 한돌은 이세돌의 약한 돌을 공격했고 이세돌도 물러서지 않고 반격했다.

치열한 전투가 예상됐던 승부는 한 순간에 싱겁게 끝났다. 이세돌의 78수 이후 한돌이 ‘축 버그’로 보이는 기초적인 실수를 범했다.

한돌의 어이없는 실수를 본 이세돌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바로 한돌의 요석 3점을 잡으며 승리를 결정지었다.

바둑에서 ‘축’이란 계속해 단수를 쳐서 상대의 돌을 잡는 매우 기본적인 기술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축을 AI가 계산 착오를 일으켜 간과하는 경우 ‘축 버그’가 발생했다고 한다.

대국 후 이창율 NHN 게임 AI 팀장은 “한돌은 78수를 예상하지 못했다. 78수 이후 승률이 확 떨어졌다”며 “알파고 때 이세돌 9단이 78수로 이긴 것을 기억하는데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세돌은 “알파고 때는 정상적으로 보면 안되는 수였지만 이번에는 프로라면 누구나 그렇게 두는 당연한 수였다”며 “한돌이 그렇게 한 것이 너무 의외였다”고 받아쳤다.

이세돌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대국 당시에도 78수의 묘수를 둬 1승(4패)을 따냈다.

대국을 지켜보던 일부 프로기사들은 이세돌의 78수 이후 한돌이 허무하게 무너진 것에 대해 한돌이 축 버그를 일으킨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송태곤 바둑 해설위원은 “이세돌 9단이 오늘 둔 78수는 굉장히 좋은 수였다”면서도 “이세돌이 둔 수를 한돌이 받아냈다면 한돌에 유리한 쪽으로 대국이 흘러갈 수 있었다. 축 버그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78수 이후) 한돌의 탈출구가 두 개가 있었는데 축 버그가 의심되는 쪽으로 탈출을 했다. 이세돌 9단이 좋은 수를 둬서 상황이 불리했는데 그 수를 두면서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고 설명했다.

축 버그는 바둑 인공지능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서울 ‘수담(手談)’ 부대행사로 열린 신진서 9단과 오지고(Og-GO) 대국에서도 오지고가 축을 못 봐 83수 만에 끝난 적이 있다. 오지고는 카카오브레인이 개발한 인공지능이다.

송 9단은 “프로기사들이 한돌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공지능과 대국을 많이 두는데 중국의 절예, 골락시 등 최강 그룹말고는 축 버그가 존재한다고 다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돌의 개발사인 NHN은 “버그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창율 AI 팀장은 “머신러닝은 학습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능이 올라가는데, 2점 접바둑뿐 아니라 3점 접바둑도 준비해야 해 학습량이 많지 않았다”며 “전체적으로 학습량이 부족한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목진석 바둑대표팀 감독 역시 “초반에도 축 모양이 나왔는데 거기에선 한돌이 판단을 제대로 했다”며 축 버그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보통 인공지능을 상대로 대국을 두다보면 인공지능이 찾지 못한 수를 뒀을 때 승률이 오를 때가 있는데 이세돌 9단이 둔 수(78수)도 바로 그러한 수”라고 말했다.

한편, 인공지능을 상대로 1승을 따낸 이세돌은 오는 19일 같은 장소에서 한돌과 2국을 펼친다. 1국에서 승리함에 따라 2국은 치수없이 호선(맞바둑)으로 치러진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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