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이어령 “시인 이상처럼… 의미를 남기면 불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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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의 만남’ 강연자로 나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왼쪽)이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에서 17일 열린 ‘이상과의 만남’에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이상을 기억하는 오늘 자리는 작지만 크고, 순간이지만 영원하다”면서 “이상은 시간을 이기고, 파란을 견디면서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왼쪽)이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에서 17일 열린 ‘이상과의 만남’에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이상을 기억하는 오늘 자리는 작지만 크고, 순간이지만 영원하다”면서 “이상은 시간을 이기고, 파란을 견디면서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 소리꾼 장사익 씨가 ‘귀천’을 노래하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5)이 손으로 입을 감싸 쥐고, 감상에 빠져들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로 노래를 마칠 때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슨 뜻이었을까.

알려진 것과 같이 이 전 장관은 암 투병 중이다. 외부 행사도, 모임 초대도 거의 사절하고 있는 그가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이날 마련한 ‘이상과의 만남’ 행사에 강연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짬을 내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몸이 불편해도 오늘 나온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상처럼 일찍 세상을 떠나도, 불행했어도 오래도록 사는 방법이 있다”면서 “내가 이상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를 전하면 청중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이상이 탄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병중에도 그는 ‘한국론’을 구술로 집필하고 있다. 12권이 목표지만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쓴다. “내가 비록 세상을 떠나도 생각이 끝없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져간다면 이런 게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 쓰는 사람은 절망이 끝이 아니에요. 절망을 글로 쓸 수 있잖아요. 그게 암흑이라고 해도 암흑을 쓸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는 “생명은 숨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정보가 생명”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목숨은 다해도, 정보는 살아남는다.

“생명은 바로 의미의 세계예요. 신라의 뜻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절대로 멸하지 않은 것이에요. 영원한 것이 없는, 누구나 죽는 삶 속에서 뭐를 남길 것이냐? 의미를 남기는 것이죠. 이상이 바로 그래요. 큰 기념관은 없지만 이상 같은 사람이 오늘날의 한국을 있게 만든 것이지요.”

사실 이 전 장관은 투병이 아니라 ‘친병(親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많아지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 병과 함께 살자고 태도를 바꿨더니, 병과도 친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항암치료는 받지 않고 있다.

“객기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내 나이는 자연히 수명을 다해 세상을 뜨나, 병으로 세상을 뜨나 마찬가지예요. 더구나 나이 많은 사람은 (암 진행이) 더디니까. 참고 견디면서 글 하나 더 읽고, 창문 한 번 더 열고 풍경을 보는 것, 그게 의미가 있어요. 물론 내 얘기고, 젊은 사람들은 의사 지시 따라서 항암 치료 꼭 받으세요.(웃음)”

피곤한 듯하던 이 전 장관은 강연을 시작하자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힘을 더 얻어가는 듯했다. 그는 “이상은 처음으로 공간적이고 시각적인 시를 쓴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차기회장, 박정자 배우, 문화재청의 정재숙 현 청장과 이건무 전 청장, 김원 건축가 등 30여 명이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은 내게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일한 것을 두고 나라에 공헌했다고들 하는데, 이런 건 내 삶에서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에요. 장관도 내 일생에서 2년밖에 안했어요. 지금은 올림픽 굴렁쇠나 알지, 내가 ‘공간기호론’을 썼다는 건 몰라줘요.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공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로운 것, 알아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지요.”

그는 젊은 시절 ‘우상의 파괴’를 써서 기성 문단을 뒤흔든 사람이 아니라, ‘이상론’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작가 이상을 되살려낸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는 이상의 작품과 유품, 초상을 찾아내고, 이상문학상을 제정했다. 그가 창간한 ‘문학사상’ 첫 호 표지가 이상의 초상이다.

“이상은 젊은 나이에 객사한 폐결핵 환자지요. 불행하게 살았어요. 그러나 작품만으로 권력과 돈을 남긴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1930년대 돌아가신 분이 지금도 새로움을 갖고 있다는 게 진짜 공헌이지요.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이름 내는 사람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별로 공헌한 게 없지요. 뒷골목에서 숨어서 일한 분들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끌고 갈 겁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어령#이상과의 만남#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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