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 당한 전남 나주 송제리 고분, 알고보니 백제 왕실 무덤

  • 뉴시스
  • 입력 2019년 7월 25일 1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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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송제리 고분은 백제 왕실의 무덤이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훼손고분 기록화’ 사업으로 발굴조사한 전라남도 기념물 제156호 ‘나주 송제리 고분’에서 백제 성왕대 은제 관식, 허리띠 장식, 청동 잔, 말갖춤, 호박 옥을 확인했다.

나주 송제리 고분은 1987년 처음 도굴된 상태로 알려진 고분이다. 이후 2000년 돌방에 대한 간단한 실측조사가 이뤄졌다. 당시 돌방 평면은 사각형에 가깝고, 천장은 무지개처럼 높고 길게 굽은 궁륭형(穹隆形)이고 벽면에 석회가 칠해진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이 고분은 옹관 핵심 분포권에 있어 그 축조 시기와 성격을 둘러싸고 관심을 받아왔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송제리 고분 구조와 축조방법을 밝히고, 보존·활용 방안 마련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정밀 발굴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로 고분 규모와 구조, 축조법, 새로운 고분 확인, 은제 관식, 백제 성왕대 왕실 지배층 복식, 말갖춤 등 영산강 유역 고대 정치조직의 실체와 변화상을 규명할 수 있는 새 자료들을 확보했다.

고분 규모는 지름 20m 내외, 높이 4.5m로 원형의 평면 형태다. 외곽에 원형의 도랑이 있는데 이 내부에서 토기 200여 점의 조각이 나왔다.

돌방은 기초를 1m가량 다진 후 봉분과 함께 쌓았다. 돌방은 길이 3m, 너비 2.7m, 높이 2.5m인 사각 평면 널방 가운데에 길이 4.2m인 통로인 널길이 달린 구조다. 인접 지점에서는 보고된 적 없는 새 고분 1기의 매장시설이 모두 훼손된 상태로 확인됐다.

돌방에서는 관모장식인 ‘은제 관식’이 나왔다. 장식 모양이 기존의 은화관식(銀花冠飾)과 다른 형태다. 은화관식은 백제 고위관료인 나솔(6품) 이상이 이마에 착용했던 장식품이다. 따라서 관식은 주로 백제 지배층 고분에서 나온다.

기존의 은화관식은 꽃봉오리 모양이 주를 이루는 반면, 이번에 나온 관식은 풀잎 모양이다. 은 재질과 제작기법(좌우 대칭, 은판을 오린 다음 접어 만들기)은 은화관식과 동일하다.

함께 나온 유물들을 볼 때 은화관식으로 정형화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웅진기 말에서 사비기 초 공백을 메워주는 첫 사례로 평가된다.

은제 허리띠 장식은 허리띠 끝장식, 교구(?具), 과판(?板)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교구는 버섯 모양으로 교침(?針)이 없는 형태다. 백제 웅진~사비기의 과도기적 모습이다. 과판은 심장 모양으로 연결고리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졌다.

이 밖에 청동 잔, 호박 옥, 장식칼 부속품은 공주 무령왕릉 출토품과 같다. 관못은 못 머리가 둥글고 은으로 감싼 원두정(圓頭釘)으로 주로 백제 고위층 무덤에서 확인된다

말갖춤으로는 발걸이와 말 다래 고정금구가 출토됐다. 발걸이는 바닥은 평면이고 윗면은 둥근 모양으로 발을 딛는 부분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그 윗면에는 미끄럼을 방지하는 요철들이 있다. 형태적으로 가장 유사한 유물은 의령 경산리와 진주 옥봉 출토품이다.

말 다래 고정금구는 원형 철판 중앙에 교구가 부착됐다. 서울 홍련봉 2보루를 비롯해 합천 옥전과 경주 미추왕릉에서 출토된 바 있다.

나주 송제리 고분 유물은 이 무덤 주인이 가장 높은 위계 인물이고 주로 활동한 시점은 백제 성왕대였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무덤이 영산강 유역의 중심지인 나주 복암리나 반남 지역과 떨어져 있게 된 배경과 당시 이 지역 정세는 앞으로 풀어 나가야할 과제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나주 송제리 고분군 발굴조사를 마무리하면 구조 안전성 점검과 정비·복원을 거쳐 지역민들이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장설명회는 26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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