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동작가이자 학대범, 진보 지식인의 두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7일 03시 00분


◇완벽한 아내 만들기/웬디 무어 지음·이진옥 옮김/472쪽·2만1000원·글항아리

미혼 남자라면 원하는 아내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신붓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대부분은 조금씩 양보하며 큰 문제없이 잘 살아갈 것이다.

계몽주의가 맹렬한 기세를 떨치던 18세기, 영국 지식인 토머스 데이(1748∼1789)는 그러지 않았다. 데이가 원하는 신붓감은 우선, 순진한 시골 처녀이면서도 때로는 스파르타 여인처럼 강인해야 했다.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오두막에서 검소하게 살아야 하며 남편인 자신이 변덕을 부려도 고분고분하게 맞춰야 한다. 데이는 그런 신붓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다. 결국 데이는 자신이 직접 그런 여성을 만들어 내기로 결심했다.

데이는 고아 소녀 두 명을 비밀리에 입양해 완벽한 아내 만들기 실험에 돌입했다. 한 명은 곧 탈락. 데이는 나머지 한 소녀(사브리나)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시킨다. 이 과정에서 불에 녹은 왁스 덩어리로 맨살을 지지거나 핀으로 찌르는 식의 학대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데이는 시인이자 아동작가였다. 또한 노예제를 반대하는 급진주의적 사상가였다. 그는 대표적인 계몽주의자 장자크 루소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시인이자 의사인 이래즈머스 다윈, 화가 조지프 라이트 등과도 교류한 진보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는 편협하고 옹졸했다.

영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데이와 그의 실험체로 전락해 고통스러운 삶을 산 사브리나의 인생 역정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사회 변혁을 이끌었지만 극단주의와 모순도 유발한 계몽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끄집어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완벽한 아내 만들기#웬디 무어#이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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