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p의 ㅍ’ 발음을 구분해서…” ‘제2의 백남준’ 강익중의 ‘한글 혁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1일 22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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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부터 영어 발음 ‘p의 ㅍ’과 ‘f의 ㅍ’, ‘l의 ㄹ’과 ‘r의 ㄹ’, ‘b의 ㅂ’과 ‘v의 ㅂ’ 등을 구분해서 표기할 것입니다. 한글은 최고의 언어이고, 소리를 만드는 능력이 기가 막힙니다. 외국인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이런 구분만 해결하면 한글은 세계를 연결하고 엮는 최고의 문자가 될 것입니다.”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재미동포 강익중 작가(57)의 작품 세계는 한글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가로세로 3인치(약 7.6cm)인 정사각형 패널에 한 글자씩 써넣은 한글은 ‘강익중 한글체’로 명명될 정도다. 6일 미국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강 작가는 “앞으로 내 작품에선 r, v, z, th, f의 다섯 개 영어 자음은 한글의 ㄹ, ㅂ, ㅈ, ㅌ, ㅍ에 일획을 추가해서 l, b, j, t, p 발음과 구분되도록 할 것이다. 한글의 기본 자음 19개를 24개로 확장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글의 장점인 유연성 확장성 호환성은 인공지능(Al) 시대를 맞아 더욱 강화돼야 합니다. 한글도 변화해야 합니다. 그 변화엔 정답이 없습니다. 나의 이런 실험도 하나의 시도일 뿐입니다. 이런 변화와 시도는 한글학자는 하기 힘들죠. 미술가인 나는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시도는 ‘도발적’이지만 결코 즉흥적이지 않다. 수십 년간 한글을 그의 작품에 녹여내면서, 세계 곳곳에서 한글을 공부하고 구사하는 외국인을 만나면서 정립돼 온 고민의 산물이다.

“동유럽 불가리아에서도 한국말을 너무 잘하는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한글로는 표현 못하는 발음이 없다’고 극찬했습니다. 다만 p와 f, l과 r, b와 v 등이 구분되지 않고 같은 자음(ㅍ, ㄹ, ㅂ)으로 표기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더군요.”

그는 한글의 이런 변화가 ‘문자 혁명이자 언어 혁명이고, 한민족의 정신 혁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글이 전 세계에 문자 없는 나라로 가서 ‘말만 있고 글은 없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글은 문자 이전에 음양의 조화를 이룬 철학입니다.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듯이, 한글의 모음과 자음이 만나서 소리가 나옵니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지만 그런 한글 덕분에 반드시 통일이 될 것입니다. 한글이 통일의 비밀 코드이자 비밀 열쇠입니다. 한글 덕분에 남북이 하나 되면 무엇이 나올까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입니다. 한글이 그 홍익인간 정신을 세계에 실천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는 “화살을 쏠 때 과녁까지만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작 과녁에 도달하지 못한다. 과녁을 관통할 생각을 해야 과녁을 맞힐 수 있다”며 “남북통일도 마찬가지다. ‘통일한국은 무엇을 하고 어떤 나라여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통일에 이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한글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찾아나가야 한다. 통일한국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글이 세계적으로 확장돼야 하는 이유도, 반드시 남북통일이 돼야 하는 이유도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에게서 찾았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후손들이 나중에 지금의 우리 어른들을 보고 ‘당신들은 그때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당당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모든 문제의 해법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데, 우리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 언제까지 중국만 탓하고 있을 건가요. 미세먼지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방법을 우리(어른들)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해안에 인공강우를 내리게 하든지, 콧구멍에 넣는 1회용 위생기구를 만들든지 말이에요.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른은 어른 자격이 없는 겁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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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유명한 세계적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가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자신의 작품을 가리키고 있다. 작은 사진은 영어 자음 r, 
v, z, th, f를 l, b, j, t, p 발음과 구분해 ㄹ ㅂ ㅈ ㅌ ㅍ에 1획을 추가한 새로운 한글 표기법이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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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세로 3인치(약 7.6cm) 정사각형 패널에 한 글자씩 써넣은 한글 작품으로 유명한 세계적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가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자신의 작품을 가리키고 있다. 작은 사진은 영어 자음 r, v, z, th, f를 l, b, j, t, p 발음과 구분해 ㄹ ㅂ ㅈ ㅌ ㅍ에 1획을 추가한 새로운 한글 표기법이다. 그는 “(새 표기법은) 한글이 세계를 연결하는 최고의 문자가 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부형권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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