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한국 블로그]“저는 외국인 한국공무원(?)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영국에선 새해 첫 글에 대한 주제를 고르기가 어렵지 않다. 그저 크리스마스에 칠면조와 크리스마스 푸딩을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쪘다는 둥, 새해 결심이 뭐였는데 벌써 어겼다는 둥 말하다가 독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면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음식을 먹지도 않았고, 영국에서와 달리 월요일과 화요일 모두 일했다. 그래서 다른 주제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난 서울시 공무원이다. 공무원으로 일해 온 1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이 글에 모두 쓰고 싶지만 내용을 다 썼다간 근속 2주년 기념일을 맞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 공무원이 되기 전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계법인에서 8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처음 출근한 날부터 난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우선 몇천 명이나 되는 시 직원 중 유일한 백인이다. 어디 가도 티가 난다. 다행히 외국인다문화과 직원들이 다 착해서 금방 적응했지만 업무를 익히는 데엔 시간이 걸렸다.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용어 때문이었다. 한국말을 어느 정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공무원 용어는 무척 생소해 새로운 사투리를 배우는 느낌이 났다. 게다가 이 사투리(?)의 난도는 경남 사투리와 제주 사투리의 중간 정도로 느껴질 만큼 어렵다!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에피소드도 있다. 서울시 공무원이라고 밝히면 자주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시장님을 만나본 적이 있냐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번 봤고 서로 얼굴을 익혀 시청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눌 정도다.

 시장님은 마음이 넓어 실수가 잦았던 나를 많이 양해해 줬다. 근무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내가 행사의 사회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때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투자자를 꼬셔야 한다”고 잘못 표현했다. 과장님께 꾸중을 한 바가지 들었지만 다행히 시장님은 시원하게 넘어가줬다.

 반면 살짝 미울 때도 있었다. 난 영국인이다. 축구광이란 의미. 지난해 5월 FC서울 프로축구단과 행사를 했다. 글로벌센터장 자격으로 잔디도 밟고 선수와 악수도 하고 시축도 하게 돼 있었다. 이런 기회는 모든 축구팬의 꿈인 만큼 기대가 컸다. 그런데 2주 전에 시장님이 갑자기 참석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졸지에 내가 들러리가 된 것이다. 밉다! 밉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보람을 느낀 적도 많다. 1년간 부지런한 직원과 같이 서울 생활에 어려움이나 불편이 있는 외국인들을 도와주는 것은 진짜 보람 있는 일이다. 내년에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공무원 생활을 할 계획이다. 공무원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쓰고, 기사가 나간 뒤 별 후폭풍이 없으면 새로운 에피소드를 더 풀도록 하겠다.

 참,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새해 결심을 세웠는지 궁금하다. 누구는 영어 공부를 할 거고 살을 빼거나 담배를 끊거나 술을 줄이려는 분이 있을 것이다. 나의 새해 결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 외국인의 한국 생활 흥망성쇠를 매월 재미있게 쓰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것, 또 하나는 내가 쓴 글의 내용으로 민원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 부탁이 있다. 한국에 산 지 12년이 넘었는데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매월 상담을 받아볼까 한다. 우선 크리스마스 선물로 여친에게서 실내화를 선물받았는데 한국에선 애인끼리 신발을 주고받으면 안 된다고 들었다. 여친이 건넨 실내화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다. 노자의 명언 중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동아일보에 글을 몇 번이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첫발은 내디뎠다. 방금 태어난 송아지처럼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은 더 강하게 디딜 텐데 독자들께서 내 글을 계속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새해#공무원#박원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