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회화와 비디오 아트, 그 교집합을 찾는 재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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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展

백남준의 설치작품 ‘달에 사는 토끼’(1996년) 뒤 벽에 조선 화가 장승업의 그림 ‘오동폐월(오동나무 아래에서 달을 보고 짖는 개)’이 걸려 있다. 이번 전시에서 드물게 병렬해 함께 보는 ‘맛’이 나는 한 쌍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백남준의 설치작품 ‘달에 사는 토끼’(1996년) 뒤 벽에 조선 화가 장승업의 그림 ‘오동폐월(오동나무 아래에서 달을 보고 짖는 개)’이 걸려 있다. 이번 전시에서 드물게 병렬해 함께 보는 ‘맛’이 나는 한 쌍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조선 화가 김명국 심사정 최북 장승업과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언뜻 나란히 놓기 망설여지는 조합이다. 내년 2월 5일까지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는 그 불안정해 보이는 조합에서 애써 연결점을 찾아 줄지어 엮어 놓은 전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조선 중후반기 화가 4명의 작품 50여 점을, 백남준아트센터가 백 씨의 작품 28점을 내놓았다. 각각의 작품이 높은 가치를 지녔음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협력전을 공론화한 뒤 전시 프로그램을 고민한 것인지, 아니면 두 컬렉션의 교집합에 대한 공감에 따라 협력전이 추진된 것인지, 한 바퀴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전시실 초입에는 장승업이 비단에 그린 수묵담채화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4폭을 걸어놓았다. 청동그릇이나 꽃병에 길한 기운을 상징하는 오브제를 곁들이는 이 그림은 부귀와 장수, 가문의 번성에 대한 기원을 담은 중국 송나라의 장식화 양식이다. 그 바로 앞에 백남준의 1989년 작 ‘비디오 샹들리에 1번’을 매달아 놓았다. 소형 TV 여러 대를 샹들리에 형태로 엮은 이 설치작품에서 ‘복과 부귀’를 표출한 하나의 양식을 살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촉도산천 300리 길을 그린 심사정의 ‘촉잔도권’.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와 함께 전시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중국 촉도산천 300리 길을 그린 심사정의 ‘촉잔도권’.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와 함께 전시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심사정이 818cm 길이의 종이 두루마리에 그린 담채화 ‘촉잔도권(蜀棧圖券)’은 백남준의 2001년 작 ‘코끼리 마차’ 곁에 놓였다. 좌불상을 태운 코끼리 조각상이 TV 더미가 수북이 쌓인 수레를 끄는 형태의 이 설치작품에서 심사정의 생애 마지막 걸작과의 어떤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걸까. 전시 주최 측은 “심사정의 그림은 긴 여로의 표현을 통해 삶의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하는 자세를 드러내려 했고, 백남준의 작품은 길을 따라 이동하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정보의 공유와 전파 양식의 이상향을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언뜻 그럴싸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오동나무 아래 선 개 한 마리가 꽃과 달을 바라보는 장승업의 그림 ‘오동폐월(梧桐吠月)’ 옆에는 토끼 목각상과 달 이미지가 비친 TV를 마주 놓은 백남준의 설치작품 ‘달에 사는 토끼’(1996년)를 배치했다. 이 한 쌍은 그럭저럭 아귀가 맞는다. 백남준은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라는 말을 남겼다. TV 속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토끼와 달빛에 젖은 국화를 응시하는 개의 눈빛에 묘한 공명이 오간다.

 백남준아트센터 측은 “평생 기존 형식 질서의 파괴를 추구한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인간의 미적 이상향을 추구함으로써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 조선 회화와 일맥상통하는 가치를 보여 준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승려 혜원과 시인 도연명, 도사 육수정의 만남을 담아낸 최북의 담채화 ‘호계삼소(虎溪三笑)’ 곁에 백남준이 2001년 만든 비디오 조각 ‘슈베르트’ ‘율곡’ ‘찰리 채플린’을 붙여둔 것을 두고 유쾌한 연계라고 수긍하기는 아무래도 민망하다. 따로 떼어 보기보다 풍성하지 못한 이어 보기는 그저 ‘잘못된 만남’일 뿐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심사정#ddp#백남준#장승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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