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혁 대표, ‘죽은 책’ 되살리는 ‘서적 심폐소생술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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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최측의 농간’ 신동혁 대표
절판작 복간 위해 작년 창업, ‘은빛 물고기’등 4권 다시 펴내
“한명의 독자라도 남아있다면 내가 살려낸 책은 절판 안해”

절판된 책을 엄선해 복간하는 출판사 ‘최측의 농간’의 신동혁 대표. 신 대표의 목표는 그가 복간한 책을 다시 절판시키지 않는 것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절판된 책을 엄선해 복간하는 출판사 ‘최측의 농간’의 신동혁 대표. 신 대표의 목표는 그가 복간한 책을 다시 절판시키지 않는 것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근데 박수를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는 2008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시구(詩句)에 가슴이 먹먹했다. 대학을 휴학한 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밤낮으로 고민하던 때였다. 시인은 ‘여림’이라 했고, 1967년 태어나 2002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여림의 유고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에 담긴 시구였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세상에 단 한 작품도 남기지 못했던 여림을 위해 문우(文友)들이 2003년 그의 컴퓨터에 있던 글을 엮은 시집이다.

 그는 이 시집을 찾으러 웬만한 서점을 모두 다녔다. 하지만 책이 절판돼 구할 수 없었다. 여림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있던 2011년, 헌책방에서 겨우 시집과 만났다. 그날 그는 세상에서 사라진 책을 되살려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신동혁 대표(33)는 서적 심폐소생술사다. 절판된 책을 복간하는 출판사 ‘최측의 농간’을 운영하고 있다. 독특한 출판사 이름에 담긴 속뜻은 무얼까. “책이 절판되는 건 철저히 시장 논리 때문이에요. 돈이 안 되니까 더 이상 찍지 않죠. 여림의 시집을 구하며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는데 출판하지 않는 건 주최측(출판사)의 농간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조금 험악한 생각을 했었죠.”

 신 대표는 지난해 8월 복간 전문 출판사를 차리며 아예 이름을 ‘최측의 농간’으로 지었다. 대학 시절 함께 책을 읽던 후배 안희성 씨(30)가 편집자를 맡았다. 

 출판사를 차리기 전까지 그는 그릇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떻게든 돈을 벌어 대학원에 들어갈 고민을 하던 차였다.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여림의 시를 백방으로 찾으며 가졌던 꿈이 떠올랐다. 일주일에 3, 4회씩 함께 책을 읽던 안 편집자와 만든 300여 개의 절판 도서 목록이 무기가 되겠다 싶었다.

 “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당연히 큰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키우기 위해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죠. 그냥 우리가 읽고 싶지만 구하지 못했던 책을 살려보자는 의기투합이 창업의 시작이었어요.”

 출판사를 열기로 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신생 출판사에 작가들이 과연 복간을 허락할지가 걱정이었다. 절판된 책의 저자들은 원로가 됐거나 세상을 떠나 섭외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작가와 유족들은 ‘최측의 농간’의 취지를 지지했다. ‘귀중한 일’을 한다는 칭찬도 받았다.

 지금까지 ‘무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 ‘은빛 물고기’,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등 4권의 책을 냈다. 시장 반응도 나쁘지 않다. 되살려 낸 여림의 시집은 1200부가 팔렸고 나머지 책들도 400∼700부씩 팔렸다. 신 대표는 “1쇄가 채 팔리기 어려운 도서 시장에서 이 정도면 선전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의 목표는 한 명의 독자라도 남아 있다면 자신이 되살린 책은 절판하지 않는 것이다.

 신 대표는 어릴 적 가진 소박한 꿈이 직업이 됐다는 데에서 인생의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동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본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걸로 창업하면 당장 부자는 못 돼도 오래, 즐겁게 일할 수 있어요. 충분한 준비 없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뛰어드니 창업에 실패하는 것이죠.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느냐, 오래 할 수 있느냐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송충현기자 balgun@donga.com
#최측의 농간#신동혁 대표#서적 심폐소생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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