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별똥별이다” 깊은 밤 펼쳐지는 우주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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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아름다운 동행’]

  ‘하빠’란 ‘아빠 역할을 자임한 할아버지’를 뜻하는 신조어. 맞벌이가 확산되면서 태어난 말이다. 여태까지의 추세는 할머니가 직장을 가진 딸이나 며느리 대신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할아버지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손자 손녀에게 아빠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 주역은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1955∼63년 태생으로 745만 명으로 추산)로 이들의 은퇴가 하빠 등장의 물꼬를 텄다.

 30년 전후의 오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비로소 여유를 찾은 50대 중반∼60대 중반의 은퇴남성. ‘일과 생산성’만이 존재이유였던 이들에게 손자 손녀 돌보기는 은퇴 이후 삶을 지배하던 상실감을 극복시켜 주는 힘이었다. 새로운 일이자 생산성 실현 대상으로 충분했다.

 그런 이들을 자극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아빠를 필요로 했던 자녀를 충실히 돌보지 못했다는 아버지로서의 회한이다. 그래서 자기처럼 직장에 매여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아빠, 혹은 사위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다.

 하빠투어는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맞벌이부부에겐 가족여행도 쉽지 않다. 1년에 두서너 번, 휴가철이 고작이다. 그런데 은퇴한 할아버지와의 여행은 다르다. 훨씬 기회가 많다. 게다가 하빠는 경험도 풍부하고 지식도 많다. 비록 짧은 기간일지라도 오가는 대화를 통해 가르치고 배운다. 그래서 가족의 결속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좋은 인성을 키우는 훌륭한 수단이기도 하다. 8월 12일 밤하늘의 유성우를 보러 춘천의 별과 꿈 관측소를 찾은 이유신 씨(64)와 손녀의 하빠투어를 소개한다.

지구공전궤도를 지나는 혜성의 잔해 유성우는 규칙적으로 밤하늘에 나타난다. 그런데다 대기권 돌입 후엔 불이 붙은 상태로 추락해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어 하빠투어의 좋은 테마다. 사진은 장흥천문대에서 촬영된 사자자리 유성우로 유성 2개가 직각방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11월 14∼21일엔 템펠-터틀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유성우를 볼 수 있는데 최적일은 17일 밤. 동아일보DB
지구공전궤도를 지나는 혜성의 잔해 유성우는 규칙적으로 밤하늘에 나타난다. 그런데다 대기권 돌입 후엔 불이 붙은 상태로 추락해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어 하빠투어의 좋은 테마다. 사진은 장흥천문대에서 촬영된 사자자리 유성우로 유성 2개가 직각방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11월 14∼21일엔 템펠-터틀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유성우를 볼 수 있는데 최적일은 17일 밤. 동아일보DB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뭘 하라고 했지요? 와하고 ‘비명’부터 지르라고 했지요?”

 별과 꿈 관측소 김호섭 소장의 말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스크린에 투사된 천체도에서 그날 밤 유성우가 내릴 별자리 페르세우스를 레이저빔으로 가리켰다.

 여긴 춘천시내 북한강 고슴도치 섬 부근 강변에 자리 잡은 강원도청소년수련관 내 체육관 2층의 별과 꿈 관측소. 이날은 유성을 시간당 150개나 볼 수 있을 것으로 공지돼 방문객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강의실의 50석이 꽉 찼다.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 온 초등학생들. 하빠투어 여행자는 이유신 씨 부부와 수민이(6세) 한 가족뿐이었다.

 김 소장은 천체관측이 좋아 20년간 근무한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아마추어 천문가. 별과 꿈 관측소는 체육관 2, 3층에 천체망원경 여러 대와 강의실 겸 갤러리를 갖춘 교육시설이다. 망원경은 지붕이 자동으로 개폐되는 옥상에 있다. 이날 밤 10시부터 한 시간이나 계속된 김 소장의 강의는 기자가 들어도 유익하고 재밌었다. 유성(별똥별)과 운석(지구에 떨어진 유성)의 차이, 혜성엔 왜 꼬리가 있는지, 별자리 페르세우스는 어디에 있고 남극에 유독 운석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뭔지….

 퀴즈문답 형태로 풀어간 강의는 몰입도가 높았다. 아이들의 계속된 질문 등 열띤 참여 덕분인데 나는 솔직히 초등학생의 천문지식에 놀랐다. 나도 모르는 걸 척척 대답해냈다. “초등학교 5학년 과정부터 천문학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미리미리 공부를 많이 해 그런 겁니다. 또 아이들이 관심도 많고.” 김 소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여섯 살 수민이도 다르지 않았다. 연신 손을 들고 엉뚱한 질문과 대답으로 좌중을 폭소로 몰아넣었다. 할아버지와 왔어도 기죽지 않는 모습이 대견했다. 김 소장은 “가끔 할아버지가 데려오는 어린이가 있는데 대개 할아버지는 강의실에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함께 강의를 들으니 참 보기 좋네요”라고 말했다.

 밤 11시. 모두 김 소장을 따라 천체망원경이 있는 관측장으로 올라갔다. 버튼을 누르자 지붕이 스르르 밀려나가며 밤하늘이 열렸다. 김 소장은 레이저빔 불빛으로 하늘의 페르세우스 별자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거기엔 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비교적 잘 보이는 W자 모양의 카시오페이아를 가리키며 이걸 기준삼아 찾으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복사점의 위치와 불붙은 유성의 예상궤적을 알려주었다.

 복사점은 유성이 낙하를 개시하는 위치. 유성은 지구의 공전궤도를 지나 대기권에 진입하면서부터 불에 탄다. 그리고 그 유성은 시속 20∼80km 속도로 낙하하는데 눈에 비치는 시간은 정말로 눈 깜짝할 순간(0.5∼2초). 이날 한 시간 관측과 설명을 듣는 동안 몇 차례 비명소리를 들었다. 운 좋게 유성을 본 이들이 지르는 환호다. 물론 유성은 환호와 동시에 사라졌다. 그래서 김 소장은 다음 유성을 기다리는 동안에 심심풀이로 관측할 망원경 3대의 초점을 토성과 백조자리 근방 은하수, 여름밤 가장 밝은 별 직녀성과 달에 맞춰주었다. 수민이와 할아버지도 춘천 강변의 한여름 밤을 별과 달을 보며 즐겼다.

 김 소장은 별 보기를 좋아해 아마추어 천문가의 길에 들어선 ‘별쟁이’.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별을 찾고 보는 사람의 마음은 다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알 수 없는 우주의 신비에 빨려 들어가서다. 그 신비로움의 일단을 나는 별 중에서는 그래도 가까운 편인 650광년 거리의 베텔게우스(오리온자리의 한 별)를 통해 느낀다. 이 별은 태양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이미 폭발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여태 빛을 발하고 있으니 실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폭발해 사라졌다 해도 마지막 순간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는 무려 650년이 걸려서다. 다시 말하면 지금 저 빛은 650년 전 것이다. 

 이 씨가 손녀딸과 여행지로 이 별과 꿈 관측소를, 아니 유성우 관측 현장을 선택한 건 탁견이다. 아이에게 우주의 신비를 직접 체험토록 하고, 김 소장 같은 전문가로부터 쉽고 재밌게 우주이야기도 듣게 했으니. 이 씨 스스로도 방문 전날엔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한 페르세우스의 영웅담(그리스 신화)을 손녀에게 들려주었다.

 사실 별이나 유성을 보는 하빠투어는 꼭 이런 관측소나 천문대를 찾지 않아도 된다. 김 소장도 “유성 관측은 가로등이 없어 주변이 어둡고 지대가 높은 곳이라면 집 근처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령을 알려주었다. 바닥에 자리를 펴고 누운 채 멍하니 동공을 풀고 물끄러미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천체도를 펴들거나 스마트폰에 깔아둔 천체도 앱 화면을 통해 이 별 저 별을 찾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자체로 멋진 하빠투어라 할 수 있는데 어떤가,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하지 않을지. 더구나 9월은 습도가 낮고 기온도 쾌적해 별 보기에 적기다. 

 
▼여섯 살배기 손녀와 함께 ‘별과 꿈 관측소’ 다녀온 이유신씨 기고▼
 
“별 이야기하며 반짝이던 눈망울깵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쌓아”
 

 
이유신 씨(왼쪽)가 천체망원경으로 직녀성 별자리를 보고 있는 손녀 수민이를 지켜보고 있다. 춘천시내 별과 꿈 관측소 3층 옥상의 관측장.
이유신 씨(왼쪽)가 천체망원경으로 직녀성 별자리를 보고 있는 손녀 수민이를 지켜보고 있다. 춘천시내 별과 꿈 관측소 3층 옥상의 관측장.
은퇴 후 내겐 또 다른 삶이 시작됐다. 손녀 수민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서다. 물론 대부분은 집사람이 맡지만. 딸애는 애를 낳고 중단했던 의학공부를 다시 시작한 레지던트 3년차의 만학도다. 사위 역시 의사로 일하다 보니 수민이는 자동으로 옆 동에 사는 우리가 돌보게 됐다. 아침이면 데려와 셋이 함께 식사한 뒤 유치원에 보내고 엄마 아빠가 귀가하는 저녁까지 함께 지낸다. 그런게 근 1년이 다 됐다.

 60대 우리 세대에게는 다 마찬가지겠지만, 어릴 적 할아버지는 대화 상대가 아니었다. 그저 무서운 분으로만 기억되는 어른이었다. 그래선지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뇌리에 박혀 있다. 전화를 발명한 벨이 노년에 다정한 모습으로 손자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이 내가 어릴 적엔 6·25전쟁 직후라서 꿈에 불과했다. 그런 탓에 너무 부러웠는데 그게 손녀를 돌보게 된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수민이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질문도 많다. 대답은 당연히 우리 몫. 그것만으로도 우리 부부의 역할은 막중하다. 그런데 내가 중시하는 건 따로 있다. 좋은 인성이다. 그래서 식사 예절이나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 존댓말 사용 같은 걸 중시한다. 독서와 신문읽기 같은 좋은 습관은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다. ‘부모는 자식을 등으로 가르친다’는 독일 속담대로.

 여행은 우리 부부와 수민이에게 특별한 행사다. 셋은 벌써 여러 차례 부산, 남해, 제주도 등지를 기차와 자동차로 여행했다. 어린이박물관도 다녀왔고 내년엔 유럽에도 함께 가려 한다. 나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여행길에서 나눈 끊임없는 대화-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지만-속에서 수민이가 성장하고 발전한다고 믿어서다. 

 지난달 춘천으로 페르세우스자리 유성(별똥별)을 보러 갔을 때도 미리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페르세우스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날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과 달을 보았던 수민이는 지금도 그날 본 별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면 그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나는 그 눈망울에서 그 아이가 본 별을 본다.

 집사람은 수민이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는다. 스스로 이해하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해준다. 사실 그건 엄마 아빠의 방침이다. 우린 거기에 박자를 맞출 뿐이다. 그렇다보니 아이도 점점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익숙해진 듯하다. 행동에 조급함이 보이지 않는다.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기까지 여유를 갖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지식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지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더 조심한다. 몇 달 전 공자가 남긴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붓글씨로 연습하던 중이었다. 뜻을 묻기에 ‘지나침은 모자람과 다르지 않으니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수민이가 이튿날 유치원 선생님에게 이 문자를 쓴 것이었다. 

 내년엔 나란히 지은 집으로 우리와 수민이네가 이사한다. 그렇게 되면 수민이 돌보기는 정말로 일상이 될 것 같다. 더구나 내년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런 만큼 그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우리 셋의 여행이 더더욱 기대된다. 이 하빠투어가 손녀의 성장을 도울 최고의 이벤트임을 잘 알고 있어서다. 내 어릴 적에 비해 너무도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정말로 부럽다.
 
※여행정보
 
 

별과 꿈 관측소:
강원도청소년수련관 시설로 숙박시설도 갖췄다. 평소 1박 2일과 당일(2시간) 야간 천체관측 프로그램 운영. 개인
1만 원, 가족은 1인당 5000원. DSLR카메라를 이용한 별 사진촬영 실습, 망원경 관측 지도도 진행(추가 1만 원).
▽예약: 필수. 홈페이지(www.gystar.co.kr)에서 ▽찾아가기 △주소: 강원 춘천시 사농동 277-1 △철도(경춘선):
상봉역(서울지하철 7호선·경의중앙선 환승)∼춘천역. ITX청춘열차(예매필수)로 1시간 43분 소요. 춘천역에선 택시로 이동.
▽문의: 김호섭 소장 010-6379-1579
 
 유성우 관측: 올해 세 차례 더 기회가 있다. ▽오리온자리 유성우(10월 2일∼11월 7일): 가장 많이 발생하는 극대기는
10월 21일 ▽사자자리 유성우(11월 14∼21일): 극대기는 11월 17일 ▽쌍둥이자리 유성우(12월 7∼17일): 극대기는
12월 14일. 정점시율(한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유성의 수)은 각각 23, 20, 100.
 
춘천(강원)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하빠#하빠투어#유성우#강원도청소년수련관#별과 꿈 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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