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사랑이, 삶이 두려운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일 03시 00분


<20>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

초가을 밤입니다. 파란 가로등 불빛이 나뭇잎 사이로 흘러나와 그녀의 얼굴을 비춰 줍니다. 그 불빛은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며, 나를 사랑한다는 그녀의 모습을 숨겼다가 다시 보여주곤 합니다. 지붕들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은 내 마음처럼 좁고 어둡고 답답합니다.

그녀가 보고 있는 나는 그녀의 환상일 뿐이라고, 결국 실망하고 나를 탓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힘든 현실이지만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느 쪽이든 두렵습니다.

혼잣말처럼 그녀에게 말합니다. “여름은 벌써 가 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 또 얼마나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누구나 동의하듯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조동진 씨는 두려워하는 청춘에게, 또한 자기 자신에게 이 어려운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물으며, 그 답도 후렴구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1절은 ‘사랑’이고 2절은 ‘먼 길’, 의미와 그 의미를 얻기 위한 삶의 형식과 절차를 언급하고 있죠.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 저는 삶을 XYZ 축에서 계속 꿈틀거리는 하나의 점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의 긍정적인 감정은 가장 중요하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애착에서 오고, 그 다음은 사회적 인정과 성취, 개인적 깨달음을 통한 의미 확인에서 옵니다. 분노의 가장 큰 이유는 애착 대상으로부터의 비난과 거부입니다. 그 다음은 사회적 가치를 무시당했을 때이고, 마지막은 믿음 철학 신념을 부정당했을 때입니다.

X축을 애착 관계, Y축을 사회적 가치, Z축을 믿음, 윤리나 철학으로 생각해 보죠. 세 가지 측면이 다 +에 있어서 나의 삶이 10점 만점에 ‘8, 4, 5’ 정도에 위치한다면 좋겠죠? 참고로 저는 ‘0, 0, 0’을 목표로 합니다. 그것도 무지하게 어렵습니다. Z축은 무시해도 좋습니다. XY의 평면적인 삶도 잘 살기가 무척 힘드니까요. 또 사랑과 성취가 잘되면 믿음과 철학은 저절로 따라오곤 하니까요. 그리고 성경 말씀처럼 그중의 제일은 X축, 사랑입니다.

삶을 이렇게 분류해 놓고, 먼저 그 분야들에서의 나의 위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고, 내가 도달하고 싶은 위치나 상태를 객관적으로 잠정 지정하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걸림돌들을 어떻게 없애거나 피해 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 계획들을 인내하며 실행에 옮길 때 실력은 늘고, 그래서 사랑과 인정을 받고, 그 사랑과 인정에 힘입어 자신감이 향상되고 더 좋은 판단과 계획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자기 심리학(self psychology)의 마이클 바슈가 정리한 ‘발전의 주기’입니다. 그래야 하는 줄 알기는 아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과 인정을 줄 안정적인 대상의 부재 때문이죠.

조동진 씨의 노래들은 우울합니다. 그러나 늘 ‘너’에게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너’라는 대상과의 연결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이죠. 대상이 있어야 사랑도 발전도 의미도 행복도 가능한 것이니까요.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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