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야만적인 테러 이겨내려면 우린 문화적으로 행동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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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테러로 잃은 아내 그리움 담은 ‘당신은 내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

“당신들은 너무도 특별했던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내 인생의 사랑, 그리고 내 아들의 어머니였던 사람을. 하지만 당신들은 결코 내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Vous n‘aurez pas ma haine).”

지난해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벌어진 테러로 아내를 잃은 프랑스 저널리스트 앙투안 레리(34)가 페이스북에 올린 메시지는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져 지난달 ‘당신은 내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사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이 책은 발간 직후부터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프랑스 독자들의 눈물을 쏟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18개 언어로 번역됐다.

그는 운명의 그날 밤부터 12주간의 가슴을 찌르는 고통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아내 엘렌은 “삶과 음악을 사랑한 여자”였다. 아내가 미국의 록그룹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 콘서트를 보기 위해 바타클랑 극장에 갔던 날 밤, 남편은 17개월짜리 아들과 함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앵포’에서 문화평론가로 일했던 레리는 TV뉴스의 검은 자막을 통해 테러 소식을 접했을 때의 공포를 회상한다. 그는 수백 번 아내와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는 묵묵부답이었다. 수없이 병원을 찾아 헤매던 남편은 결국 영안실에서 아내의 시신을 발견했다.

“11월 16일. 파리 경찰청 검시소에서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키스하러 갔다. 그녀는 매일 아침 깨어날 때 모습처럼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는 울었다.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과 함께 더 머무르고 싶다고. 한 시간이라도 더, 단 하루라도, 아니 평생토록…. 그러나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다.”

그는 요즘도 22개월 된 아들 멜빌과 함께 장미꽃이나 백합을 들고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힌 아내를 찾는다. 앙투안 레리의 이 책은 테러 직후 프랑스 사회가 복수와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때 삶에 대한 신중한 성찰에서 나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문체는 문학적이면서도 지성적이고, 감각적이다.

“내가 만일 분노와 증오에 내 감정의 문을 여는 순간, 내게서 아내의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분노와 증오는 유혹적이다. 내 안에서 점점 자라나 결국 내 온몸을 차지할 것이다. 나는 처음엔 슬픔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그러나 만일 내 아들과의 일상이 없었다면, 나는 슬픔에 휩싸여 지독히 외로웠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는 아들과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들을 탁아소에 맡기러 갈 때면 주변의 엄마들이 많이 찾아와 위로해 주기도 하고,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물을 그릇에 담아 건네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아들이 성장하는 기쁨과 상실의 슬픔을 모두 받아들이길 원한다. 삶이란 빛과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늘은 늘 그리 어둡지 않고, 빛은 늘 그렇게 밝지 않다. 우리는 영원히 희미한 여명 속의 삶을 산다. 이것이 인간적 삶이다.”

레리는 슬픔을 딛고 방송에서 문화평론가 일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 다짐한다.

“우리는 결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 안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야만적인 테러에 대한 반응은 문화적이어야 한다. 공포를 이해하고 이겨 내기 위해서도 문화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나는 다시 영화와 문학과 음악을 이야기하고 싶다. 문화가 우리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당신은 내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vous n‘aurez pas ma haine#앙투안 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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