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런던의 한 박물관에서 돌 조각상을 손으로 가만가만 만지는 시각장애인 소녀를 봤다. 또 다른 소녀는 조각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작품을 이렇게도 감상할 수 있구나! 놀라웠다. ‘슈베르트와 나무’(고규홍 지음·휴머니스트)는 나무 인문학자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씨가 1년간 나무를 만지고, 냄새 맡고, 잎사귀를 스쳐온 바람을 느끼는 시간을 담았다. 나무로 만든 정교한 악기를 연주하는 이와 나무 전문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절묘했다. 김 씨는 목련 꽃봉오리를 손가락으로 느끼며 말한다. “한 생애를 마친 열매는 아주 단단해요. 새로 다음 생애를 시작하려는 꽃봉오리는 말랑말랑하네요. 꽃봉오리 안쪽에는 틈이 많은가 봐요.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면 그런 틈,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뭇잎이 푸른 요즘 촉각과 후각, 청각을 통해 만난 세상에 대한 깊은 사유를 선물처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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